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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20

안보강사들과 140대 5로 맞짱뜬 학자

1. 140대 5로 맞짱뜬 까닭 2008년은, 우리 역사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해라고 해야 마땅하답니다. 이명박 정부와 이른바 '뉴라이트'가 역사 왜곡 파동을 일으켰기 때문이지요. 케케묵은 '올드라이트'보다 오히려 못한 덜 떨어진 뉴라이트가 앞장서 바람을 잡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물론 국방부 장관에 더해 국토해양부 장관, 국무총리까지 나섰습니다. 이들이 들개처럼 물고 늘어진 대상은, '근현대사' 교과서였습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몸소 나서서 "너희는 포위됐다, 손 들고 투항하라!"고 외쳐 댔겠지요. "그 출판사는 정부가 두렵지 않는가……."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교과서를 쓴 필자들 동의는 아예 얻지도 않고 무시한 채 정부에게 약자일 수밖에 없는 출판사를 윽박질렀습니다. 그리고 ..

혹시 내 할아버지도 친일? 확인해보세요

지난 2004년 8월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전격 사퇴했다. 그의 아버지 신상묵의 친일 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은 마치 숨겨져 있던 대단한 비밀이 새롭게 밝혀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신상묵의 친일행적은 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됐던 친일헌병보 박종표의 조사 및 재판기록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즉 국가의 공식 기록에 이미 다 나와 있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인구에 회자될 수 있었던 것은 '반민특위의 조사 및 재판 기록'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도서출판 다락방에서 총 17권 분량으로 영인본을 묶어냈지만, 워낙 방대한데다 문..

우익단체의 기본이념은 '기회주의'였다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 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이 글은 그 네 번째로 우익세력의 본질을 알아 본다.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4)해방..

1945년 해방의 기쁨은 2개월뿐이었다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이 글은 그 두 번째로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 결성 당시 상황을 알아본다. 지역에서 본..

해방직후 우익단체의 뿌리를 찾아서

시절이 너무 엄혹하다. 마치 박정희 시대나 이승만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실제 현 정권은 이승만을 다시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그의 분단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칭하며 반대세력을 싹쓸이하고픈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의 친위조직이었던 국민회와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땃벌떼와 백골단, 민중자결단과 같은 반공우익집단들이 '뉴라이트'로 이름만 바꿔 다시 발호하고 있는 것도 그 때를 연상케 한다. 이럴 때일수록 현대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에서 지혜와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한국 우익집단과 토호세력의 뿌리'를 약 50회에 걸쳐 추적해보려 한다. 이 글은 그 첫번째로 해방직후 마산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어떤 세력들로 결성되었는지를 알아..

함세웅 이사장, 뉴라이트를 일갈하다

저는 민주열사추모 기금으로 매월 5000원씩을 자동이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월 정부기구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이라는 잡지형 뉴스레터가 배달돼 옵니다. 45페이지 남짓한 책자이지만,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관련된 적지 않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매월 책머리에 실리는 함세웅 이사장(신부)의 칼럼을 읽는 재미가 쏠솔합니다. 그것만으로도 5000원 이상의 기쁨이 있습니다. 함 신부는 2009년 1월호 책머리 칼럼에서도 역시나 현 정부를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정부기구의 이사장이, 그것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임면권을 갖고 있는 자리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 정부를 시원하게 질책하는 글을 보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함 신부는 '쟁기로 밭을 갈고 쇠뿔로 정의를 세워야'라는 신년 칼럼에서 "현..

친일청산 반대하면서 독도문제엔 '오버'하는 사람들

지난 98년 3월 한국정신대연구소 고혜정·서은경 연구원, 경남정대연 박소정 사무국장과 함께 중국 동북3성을 헤맨 적이 있다. 중국 땅에 버려져 있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광활한 만주벌판’, 포장도 안된 흙탕길을 보름동안 ‘헤맨’ 결과, 여덟 분의 우리 할머니들을 찾아냈다.2004년 ‘위안부 누드’ 파문 때 나눔의 집에서 탤런트 이승연을 향해 일갈하던 이옥선 할머니와 지돌이 할머니가 그 때 우리와 만남을 계기로 조국 땅에 안착했고, 김순옥·이광자·박서운·이수단·조윤옥·하옥자 할머니 등은 아직도 조국 땅을 밟지 못하거나 끝내 한을 풀지 못한 채 쓸쓸히 숨을 거뒀다. 당시 어렵사리 이들 할머니의 거처를 찾았을 때 정말 허탈했던 일이 있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조두남·장지연도 친일파 "이를 어쩌나"

가곡 의 작곡가 조두남과 작사자 윤해영,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주필 등이 친일파에 포함됐다. 조두남의 경우 마산시가 '조두남기념관'을 건립하려다 시민단체와 언론의 거센 반발로 '마산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곡 를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이 마산에 남아 있어 철거논란이 격화될 전망이다. 또 장지연도 한동안 언론인의 표상으로 경남지역 각 신문사 기자회가 매년 신문의 날(4월 7일)에 묘소를 참배해 왔다. 그러나 몇 년 전 가 그의 친일 논설을 보도한 이후 와 이 참배를 중단했다. 대신 는 3·15의거 희생자 묘역을, 은 자기 회사 사장을 지낸 목발 김형윤 선생 추모비에 참배해 왔다. 그러나 는 자기 회사 주필을 지낸 장지연의 묘소 참배를 계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명..

친일파 명단서 경남 연고자 찾아봤더니

해방 후 63년만에 발간되는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가 확정됐다. 모두 4800여 명 중 경남 출신이거나 경남에서 활동한 친일파도 4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경남이란 일제강점기 당시의 행정구역으로 부산·울산도 포함된 것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명단에는 출신지가 따로 표기돼 있지 않다. 그래서 나와 현대사 연구자인 전갑생씨가 자체 조사·분석을 해봤다. 이 결과 경남과 연고가 뚜렷한 사람만 350여 명으로 밝혀졌다. 이들 외에도 출신지나 연고가 분명하지 않아 누락된 인사들이 있을 것이다. 확인되는 대로 추가할 예정이다. 성별 가나다순으로 정리했다. △강낙중(경남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 △강난희(마산경찰서 고등경찰) △강남기(진해경찰서 고등경찰) △강보형(마산·진주경찰서 경시..

숨어있는 친일파에 면죄부 될라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한국언론재단 19층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마침 다른 일로 서울 갈 일이 있기도 했지만, 기자로서 역사적인 자리에 꼭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최측의 발표와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 순서가 왔다. 다른 기자들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오늘 발표한 4800여 명의 친일인사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면죄가 되는 겁니까?" 친일 인명 발표가 반갑지만 않은 이유 사실 그동안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우려를 떨칠 수 없었던 게 바로 이 문제였다.제 아무리 편찬위원회의 전문가들이 철저히 조사했다 하더라도 증거자료 확보가 어려워 누락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단지 확인되지 않았을 뿐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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