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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2

고개만 조금 들어도 눈맛이 좋아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는 일이 참 드뭅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렇게 됐습니다. 머리를 누가 짓누르지도 않는데, 제 풀에 겨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사실은 고개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키보다 위에 있는 물건 따위에 눈길을 두는 경우가 적어졌습니다. 눈길을 자기 키와 같거나 낮은 데에 두다 보니 맨날 마주하는 것이라고는 다 똑같습니다. 사람 얼굴, 담장, 건물 아랫도리, 가로수, 가로등……. 그러나 어쩌다 고개를 들면 새로운 사물이 보입니다. 한낮에 고개를 들면 쨍하고 깨질듯이 팽팽한 맑은 하늘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모양을 갖춘 구름 떼가 뭉글뭉글 보이기도 합니다. 밤중에는, 달이나 별이 즐겁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물이 아니더라도, ..

매천 황현 초상은 죽고 나서 그려졌다

1. 매천 황현 초상화를 본 적이 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1855~1910)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이 초상을 물끄러미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진상(眞像)이 아니고 책에 있는 그림이었겠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무언가 모르겠는 어떤 기운이 끼쳐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 이 사람. 나라를 잃어서 슬프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나라를 잃은 마당에 목숨 하나 내어놓는 선비가 없다면 그것이 슬프다면서 목숨을 끊은 사람. 그러면서도 죽을 약을 먹기까지 몇 차례나 망설였다는 사람.' 1910년 9월 6일 밤. 전남 구례 광의면 자기 집에서 경술국치 소식을 들은 매천은 슬픔에 잠겨 손님을 물린 뒤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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