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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부처님도 못 막은 서울-지방 차별 2011년 9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경남 합천에서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관람권을 1만원인가 8000원인가를 주고 사서 들어가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이 가운데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들어가 있는 대장경 진본이 나들이 나와서 사람들한테 선을 보인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왕창 몰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장경판전에 들어 있는 경판들은 옛날과 달리 일절 구경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장경판전까지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 있는 터라 더욱 사람들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에 나들이나온 경판조차 눈으로 볼 수만 있을 뿐 사진 찍기는 금지돼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9월 29~30일 진행된 '합천 명소 블로거 탐방'에 참여한 블로거들도 불만이 적지 않았더랬습니.. 더보기
요즘 와불상에는 왜 차별과 욕심이 있을까 경남 사천의 백천사에 가면 자칭 '세계 최대 와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세계 최대 세계최고 세계 최다 세계 최초 좋아하는 나라는 없다는 말도 있지만, 부처님 세상에 최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머리에 '와불(臥佛)'이 들어와 자리잡은 것은, 아무래도 전남 화순 운주사 와불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런저런 풍문으로 전해들은 운주사 천불천탑과 그에 어린 전설이 그것입니다. 운주사 으뜸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뒤바뀐다 했습니다. 없고 가난한 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이야기입니다. 돌로 만든 와불이, 그것도 땅 속 깊이 뿌리가 박힌 바위에 새긴 와불이 일어설 리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런 와불이 일어설 정도로 .. 더보기
죽음조차 차별 악용하는 동아일보 1. 최진실 씨 자살 보도 ‘동아일보’ 10월 3일치 1면에는 “최진실 자살…‘시대의 연인’을 잃다”는 제목이 달렸습니다. 사실상 머리기사였습니다. 최진실 씨 자살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같은 날 10면에는 최 씨를 두고 “깜찍 요정에서 ‘줌마렐라’까지 당대의 아이콘”이라는 기사와 함께,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이튿날에는 1면에 “악플 ‘OUT’ 선플 ‘OK’…최진실 자살 이후 ‘선플달기’ 본격화”가 제목으로 떴습니다. 악플을 다는 누리꾼을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같은 4일 6면의 “與, 사이버모욕 처벌 ‘최진실법’ 만든다”와, 8면의 “증권가 사설정보지 제작팀 최소 10여개… 악성루머 양산”, “악플, 익명성-군중심리가 만들고 포털 통해 급속 확산” 등등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어지는 6일의.. 더보기
왜 여학교만 있고 남학교는 없나?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 글에서 저는 왜 여자를 만만하게 낮춰 이르는 말이 '년' 말고는 없을까, 생각을 했다고 말씀드렸지요. 옛날에는 '사회 담화 영역'에 여자는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아이 낳아주는 도구, 남자에게 종속된 노동력 또는 노리개,였을 뿐입니다. '인간'이라는 보편 개념에 여자는 빠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여중/여고 같은 여학교는 있는데 남중/남고 같은 남학교는 왜 없을까요? 제 생각입니다. '여'학교는 근대화 초기의 산물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배우고 때로 익히기(學而時習之)'가 남자(보편 개념으로서 인간)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다 근대 들어서면서(거칠게 말하면, 우리나라 근대 들머리는 일제시대가 되겠습니다.) 여자.. 더보기
왜 나이를 묻지 않고 학번을 묻나?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제게 나이를 물어오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나이가 몇 살이오?”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학번이 어떻게 됩니까?” 묻습니다. ‘간접화’가 원인입니다. 그대로 드러내면 불편하다 싶을 때, 이를테면 똥 대신 대변, 대변 대신 ‘큰 거’, 개장국 대신 보신탕, 보신탕 대신 사철탕…. 나이를 바로 물으면 다들 좀 민망하다 여기지 않습니까? ‘학번’은 대학의 그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학번을 묻는 배경에는 대학 진학이 일반화된 현실이 있다고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 못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칠공(70) 학번입니다.” 그럽니다. 상대방은 ‘나이가 도대체 얼마야? 쉰을 훨씬 넘었다는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재빨리, “국민학교 학.. 더보기
미디어스에도 수도권만 있고 지역은 없다? 수도권 매체들은 비수도권을 푸대접합니다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과 방송들의 비수도권에 대한 푸대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신문과 방송의 구조가 그렇게 서울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서울에 본사가 있는 신문들은 광역자치단체(서울은 빼고)마다 한 명만 주재 기자를 둡니다. 어쩌다 두 명을 두는 데도 있지만 그야말로 예외입니다. 지면도 그 많은 가운데 지역판은 경남·부산·울산을 통째로 묶어 한 면밖에 안 만듭니다.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방송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은 쥐꼬리만큼 나옵니다. 뉴스도 마찬가지 서울발(發)로 다 한 다음에, 지역은 5분이나 되려나 갖다 붙입니다. 예산도 인력도 당연히 그만큼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비수도권 사람들도 자기 지.. 더보기
자칭 386은 '학번 없는 운동가들'께 사죄해야 의 표지 이야기로 오른 386 주간 잡지 이 3월 1일치 24호에서 386세대를 표지 이야기로 다뤘더군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이른바 ‘386’들이 예전하고 그대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세 꼭지 가운데 40쪽 좌담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제목은 “반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러설 때는 아니다”입니다. 그런데 ‘반성’은 “엘리트주의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 한 번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테면 “우리 세대는 편 가르기 식 사고를 했다.”처럼, 이른바 ‘반성 모드’로 볼 말이 없지는 않지만, 곁가지 정도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밖에 인상적인 부분으로는 “(386세대인) 지금 40대에게 운동은 골프다. 영어 몰입 교육을 낳은 기러기 아빠도 대부분 386이다. 강남 사교육을 일으킨 장본인도 3..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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