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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천전리 서석 주인공은 연인? 오누이? 울산 울주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골짜기는 이름이 서석골이랍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전에 이름이 확인되는 골짜기입니다. 이를 일러주는 명문이 바로 천전리 서석(書石)입니다. 이 서석은 천전리 각석 아래 쪽에 주로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먼저 쓰여졌다 해서 원명이라 하는 왼쪽 네모 상자 안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을사년(법흥왕 12년, 525년)에 사탁부 갈문왕이 찾아 놀러와 처음 골짜기를 봤다. 오래된 골짜기이면서도 이름이 없어 서석곡이라 이름 짓고 좋은 돌을 얻어 글자를 새겼다.” 여기 서석곡에 사탁부 갈문왕과 동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함께 놀러 온 우매(友妹) 여덕광묘(麗德光妙)한 어사추여랑님이다.” 그밖에 이들을 수행한 이는 남자 셋과 여자 둘이었습니.. 더보기
가야 역사의 마지막을 수놓은 창녕과 고령 창녕을 두고 ‘제2의 경주’라고도 합니다. 규모나 내용으로 보면 둘은 비교 대상이 못 됩니다. 그러나 경주와 견주는 그것만으로도 창녕이 지닌 가치와 의의가 크다는 얘기가 됩니다. 신라·백제 문화보다 훨씬 덜 알려진 가야문화가, 500년대 들어 신라·백제의 각축 사이에서 거점 노릇을 했던 창녕에, 지나간 역사의 보석 같은 흔적이 되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창녕은 태백산맥을 등으로 삼고서 서쪽으로 낙동강 건너 고령·합천, 남쪽으로 같은 창녕의 영산과 밀양·함안 등 주변 지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요지랍니다. 창녕을 확보하면 낙동강 본류를 가운데 두고 함안의 안라가야와 고령의 대가야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 진출의 교두보로 창녕을 병합하고 척경비를 세운 까닭이 여기에 있.. 더보기
'선덕여왕'을 보던 중 거슬렸던 몇 가지 4일 토요일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좀 생긴데다가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얘기도 하고 해서 을 봤습니다. 채널 15에서 1부에서 6부까지 한꺼번에 내보내더군요. 이야기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전개가 되더군요. 짜임새도 탄탄한 것 같고요, 미실로 나오는 고현정을 비롯해 등장인물들도 전형성을 띠고 있고 배경 음악도 정말 그럴 듯했습니다. 같이 보던 중3 딸 현지가 흠뻑 빠져들 정도였습니다. 6부가 끝나고 나서 현지가 아쉬워하기에 인터넷에서 거금 5000원인가를 들여 '다시 보기'로 나머지도 더 봤습니다. 저는 먼저 잠들었지만, 현지는 제가 자는 옆에서 계속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꽂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대목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스토리의 전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였지만, 조금만 더 세심하게.. 더보기
경남 창녕 지명으로 전북 전주를 지킨 통일신라 며칠 전 책장을 뒤적거리다 재미있는 얘기를 찾아냈습니다. 1340년 전인 서기 670년대에, 전라북도 전주를 삼키려는 당나라의 야욕을 통일신라가 경상남도 창녕의 땅 이름을 활용해 물리쳤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 책은 이름이 ‘淘婢堂 遺稿’(도비당 유고)입니다. 전북 지역에서 법관을 하시다 변호사로 일생을 마치신 황면주(黃冕周 1920~76)라는 어른께서 쓰신 글입니다. 도비당은 그 어른의 당호(堂號)이고요. ‘도비당 유고’는 1991년 발간됐는데, 어른의 아드님께서 아버지 생전에 남기신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90년대 중반 전주 처이모 댁에 갔다가 얻었습니다. 제게는 그러니까 처가 쪽으로 친척 어른이 되십니다. ‘도비당 유고’ 20쪽에는 ‘全州의 古號考(전주의 고호고)’가 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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