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인민군 2

인민군 고위간부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이야기

기억은 잊히지만 기록은 역사가 됩니다 정찬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선의용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북한의 엘리트였던 그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조선노동당 부위원장 허가이의 부름을 받고 당 고위직인 영남지방 교육위원 임명장과 김일성 수상의 신임장을 전달받습니다. 그가 받은 임무는 "인민군대를 지휘해 경상남북도의 교육체계를 사회주의식으로 바꿔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양을 출발, 서울을 거쳐 진주를 향해 남하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이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인민군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전투,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고립된 인민군 패잔병들의 비참한 도피생활, 어쩔 수 없었던 지리산 빨치산 합류, 이후 토벌군에 ..

"왜놈 순사보다 경찰이 더 무서웠어요"

일제 강점기의 징병과 징용, 그리고 해방 직후의 미 군정과 좌-우익 대립,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 등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인 말씀이 하나 있다. 인민군보다 더 무서운 게 빨치산이었고, 빨치산보다 더 무서운 건 지방좌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빨치산이나 지방좌익보다 훨씬 무서운 건 대한민국 경찰이었다고 한다. 특히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전후 시기의 대한민국 경찰은 일제 강점이의 왜놈 순사보다도 더 악독했다는 게 어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가히 경찰이 빨갱이를 만든 거라!" 그 때문에 선량한 양민들이 경찰의 각종 악행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빨치산에 입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리산 기슭의 어른들은 증언한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의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술 증언 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