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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보도 8

항쟁의 계절, 다시 언론을 생각한다

올해 5월도 그냥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 3·4·5·6월은 민주항쟁의 계절이다. 3·15의거, 4·3항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민주항쟁 등이 모두 이 계절에 일어났다. 지난 5월 16일 광주에서 '5·18 진실 왜곡과 언론의 역할'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가슴을 저몄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사진 한 장이 신문에 보도되고,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되면서 마산에서 시작된 항쟁이 4·19혁명으로 전국에 번질 수 있었다. 만일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사진 다섯 장 정도만이라도 신문에 보도되었더라면, 과연 우리나라의 양심적 시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그게 광주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끝났..

한국언론의 일상이 된 '받아쓰기 보도'

오늘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 '나는 왜 지역신문에 미쳤나'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내용 중 1991년 '지리산 결사대' 사건도 있었는데요. 마침 지난 5월 '마창 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의 소식지에 썼던 글이 있네요. 세월호 오보로 '기레기' 소리를 듣는 요즘, 이렇게 되풀이 되는 오보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 짚어봤습니다. ‘받아쓰기.’ 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을 익히기 위해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학습방법이다. 말의 내용에 대한 의심은 필요 없다. 그저 잘 받아쓰기만 하면 100점을 얻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론보도가 그랬다. 그러나 결과는 빵점이었다. 언론 역사상 길이 남을 대형 오보가 쏟아졌다. 300여 명의 원통한 희생자를 낳은 ..

뒤통수 치는 인터뷰 관행,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앙일보의 문형배 판사 보도를 보고 떠오른 생각 중앙일보 이현택 기자와 만나 나눈 이야기가 엉뚱한 말로 바뀌어 보도됐다는 부산지법 문형배 부장판사의 글(☞중앙일보 보도 유감)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문형배 판사는 자신의 글에서 "인사하러 온다길래 승낙하였고, 차를 대접하며 가볍게 몇 마디 한 것인데, 이를 마치 제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을 승낙하고 인터뷰를 한 것처럼 기사화하는 것이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이라고 썼다. 바로 이 대목에서 7~8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지역의 시민운동 명망가 한 분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지역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던 다른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성 코멘트를 받아 기사화한 적이 있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코멘트를 해준 그 분은 크게 당황하여 나에게..

기자에게 뒤통수 맞은 현직 판사의 항변

"진심을 보여주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저의 순진함에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제가 한 것처럼 기사화한 것을 저의 순진함에 책임을 물을려니 제가 참 억울합니다." 부산지법 문형배 부장판사가 중앙일보 이현택 기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문 판사는 23일 자신의 블로그 '착한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에 올린 '중앙일보 보도 유감'이라는 글에서 중앙일보 22일자에 보도된 "우리법연구회, 좌파정부 거치며 겁없이 성장"이라는 기사는 '허위보도'라고 밝혔다. 이 글에서 그는 "중앙일보는 제가 '우리법연구회가 좌파정부를 거치며 겁없이 성장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면서 실제 자신이 했던 말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제가 한..

김주열 열사 폄훼·왜곡보도에 시민단체 발끈

어제 '100인닷컴'을 통해 전해드렸던 '마산시보의 김주열 열사 폄훼·왜곡보도'와 관련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와 범국민장준비위원회가 마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산시의 사과와 정정보도 등을 촉구했습니다. 김영만 범국민장준비위원장과 추모사업회 백남해 대표 등은 기자회견에서 마산시에 대해서는 공개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한편 3·15의거기념사업회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발행한 자료의 왜곡된 내용 때문에 그동안 김주열 열사가 폄훼되어온 부분에 대해 즉각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분들은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다면 이런 잘못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내어 바로잡을 수 있었던 부분"이라며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액수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기념사업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

63년 전 왜곡된 신문보도가 낳은 비극

해방 직후 찬탁-반탁 운동의 진실은?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중요한 내용이므로 제목과 본문 일부를 소개한다. 외상회담에 논의된 조선독립 문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워싱턴 25일발 합동 지급보(至急報)]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회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 가고 있다. 즉 번즈 미국무장관은 출발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분명하나…(후략)" 이 기사는 즉각 한반도를 반탁운동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는 또한 첨예한 좌우대결을 일으켜 단독정부 수립과 분단을 고착..

기자인 나도 기자를 믿지 않는다

내가 기자이긴 하지만, 언론은 물론 같은 기자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팩트라도 교묘히 비틀어 쓸 수 있고, 상황과 조건만 주어진다면 팩트 자체를 180도 뒤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한 게 기자이며 언론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쓴 책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마침 주어진 주제가 ‘내가 보는 언론’인지라 다시 한 번 예를 들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이른바 ‘지리산결사대 사건’이 그것이다. 그 해 가을 진주전문대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이 학교 운동권 후보 측의 신변보호 요청에 따라 강의실에서 얌전히 대기 중이던 진주·충무지구총학생회협의회(진충총협) 소속 경상대 학생 33명이 각목으로 무장한 비운동권 후보 측 학생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무런 대항도..

조선일보와 경남도민일보의 차이

조선일보의 교묘한 기사작성 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아래 사진으로 첨부한 오늘 조선일보의 기사도 내 손으로 평론하지 않겠다. 자판 두들기는 손만 아프다.(꼭 알고 싶으면 '조선일보, 같은 사건을 어떻게 왜곡시키나' 를 참고하기 바란다.) 만일 이런 식의 기사가 우리 경남도민일보에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일까? 사실 우리 경남도민일보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다. 두산중공업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일에 대한 보도도 사례 중 하나다. 그래도 아직 최소한의 내부장치는 돌아간다. 따라서 위의 조선일보식 기사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나왔다면 아마 이랬을 것이다. 1. 우선 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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