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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버이날, 아버지가 남긴 유훈을 다시 읽다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다 발견한 가훈(家訓) 오늘이 어버이날이군요. 그러나 저희 형제들에겐 고마움을 표시할 어머니·아버지가 계시지 않네요. 어머니는 5년 전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지난 3월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작년 5월 8일 어버이날에도 찾아가서 뵙진 못하고 화분만 보내드렸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화분 잘 받았다고 다시 전화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두 달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형제들이 모두 일터로 떠난 후 혼자 고향집에 남아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던 중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공책 내지를 뜯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신 '家訓(가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가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손자 손녀들도 읽기 쉽게 한글로 다시 옮.. 더보기
종합병원 '보호자 없는 병실' 절실합니다 '보호자(가 필요)없는 병실'을 아시나요?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여러 사람이 고생을 하게 됩니다. 마음 아픈 건 당연한 것이지만, 간병하는 일도 보통이 아닙니다. 힘들어하는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며 어떻게 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그렇고, 집과 병원, 직장을 왔다 갔다 하느라 드는 비용과 시간, 심신의 피로도 말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저는 최근 직장을 정리한 덕분에 회사 일에 대한 압박은 없이 아버지를 간병해드리고 있고, 또한 많은 형제들이 자주 찾아와주고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긴 합니다. 문제는 어떤 약속이나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시간에 다른 형제나 가족이 병원에 와줄 수 없으면 참 난감합니다. 또한 요즘 아버지 병세가 점점 심해지시는 바람에 밤에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게 되니, 참 어찌.. 더보기
62살이 되어서야 처음 불러보는 '아버지'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킨 정치군인들에 의해 강제해산됐던 '민간인학살 마산유족회'가 어제(20일) 48년만에 재창립대회를 열었다. 어제 창립대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노치수(62) 유족회장은 1950년 당시 우리 나이로 세살바기 아기였다. 그 때 아버지 노상도 씨를 잃고 평생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왔던 그는 62세 노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살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글이었는데, 이제야 썼으니 신문에 실을 수 있으면 싣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버려도 된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당연히 신문에 게재하고, 이 블로그에도 올려 많은 분들과 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한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아버지! 아버지를 얼마나 불러 보고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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