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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4

시(詩)조차 달리 읽게 만드는 거제 지심도

은쟈 봄에는 안 갈란다 동백섬 지심도 안 갈란다 얻을 거보다 잃을 거 더 많은 붉은 나이를 보는 거 같아서 모가지 뚝뚝 부러진 길바닥의 저 슬픔 보기 싫어서 담방담방 물수제비뜨는 바닷새들 파도의 지루함 사이로 섬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막 던져주는 자기 연민이, 한사코 밀어넣는 감정이입이 정말 싫어서 은쟈 봄에는 지심도 안 갈란다 두려움의 다리를 건너 용기를 배운다는데 웬 슬픔이 저리도 흔해 빠졌는지 참말로 은쟈 지심도 안 갈란다 -- '지심도' 전문. 이월춘 시인이 지난해 11월 새 시집 을 펴냈습니다. 아마도, 4월 13일 동백으로 이름높은 경남 거제 지심도를 다녀온 뒤끝인 때문인지 그이의 시 '지심도'가 제 눈길에 걸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꽃이 폈다가 지는 그것을 두고, 그렇게 져서 길바닥에 널린 그..

시(詩)를 읽으면서 숨이 턱 막혔다

문·청 동인 시집 소년은 휴지통을 뒤져 점심을 해결했다 휴지통을 뒤지는 건 당당한 일이므로 소년은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봉지에서 햄버거나 포테이토를 꺼내 뱃속에 채워넣었다 어느 국립대학교 인문대 앞에서 본 풍경이다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다가 문득 보게 된 야구모자 눌러쓴 소년의 늦은 점심 소문이 꽃향기처럼 훅 몰려왔다 신인류의 탄생설까지 나왔고 모든 추측은 아름답게 신화화 되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걸인이거나 노숙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강의실 오르는 계단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고 무덤처럼 견고하게 입을 틀어막고 있어야 할 휴지통은 여기저기 내부를 쏟아내고 있었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생수를 주워 뚜껑을 열었다 딸깍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침전물이 없는 순수한 지하암반수가 그의 목구멍을 시원하게 흘러내려갔다 ..

나는 김지하 시인이 좀 조용해지면 좋겠다

음력 2월 4일인 지난 3월 19일은 김지하 시인의 예순아홉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에서 시집 출간을 맞아 밥집으로 기자들을 불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시삼백(詩三百)'은 의 다른 이름이라 합니다. 이번에 알았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공자가 을 예순아홉 일흔 되던 나이에 펴냈다면서 자기 시집 제목을 이리 잡은 데 대해 '오마주'-존경의 뜻을 담은 따라하기라 한 모양입니다. 김 시인이 이렇게 '이벤트'를 해대니까 이튿날 서울 일간 신문들은 한꺼번에 관련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김 시인이 소유한 문학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 줍니다.(저는 김지하의 작명이 오마주가 분명 아니라고 짐작합니다.) 김 시인은 아무래도 나서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또 이를 통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

이응인의 담담한 시집 '그냥 휘파람새'

1. 밀양에는 밀양문학회가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소속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이라는 연간지를 지난 해까지 22집을 내는 등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밀양문학회는 이렇습니다. 민족시인 고 이재금 선생 등이 만들었습니다. 소설가 김춘복 선생을 비롯해 교육·문화계 등 다양한 문학인들이 참여해 젊고 역량 있는 작품을 쏟아내면서 지역 문학을 앞장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응인 시인입니다. 이번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색깔도 독특하고 솜씨도 남다릅니다. 이른바 일가(一家)를 이뤘다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2. "용두강 밑에서 강을 바라보는데 삼성 마크도 선명한 대형 포크레인이 강의 가슴팍이고 허벅지고 쇠바가지로 마구 파헤친다. 쇳소리 이가 아리고 머리가 지끈대는..

지역신문 문학 담당기자가 누리는 보람

신문기자가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요? 엄청난 사건을 특종 보도해서 안팎으로 관심이 쏠리고 일정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했을 때 당연히 보람을 느끼겠지요. 저도, 엄청난 특종은 아니지만 보도를 해서 세상 눈길을 끌고 어느 정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돼 뿌듯해 했던 적이 한두 번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뿌듯함이나 보람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이런 뿌듯함이나 보람도 있음을 며칠 전 알게 됐습니다. 2월 11일치 경남도민일보에, 마산시로부터 징계를 먹은 보건진료소장이 시집을 냈다는 기사를 내고 나서였습니다. 기사는 이렇습니다. 문학 관련입니다. 주민을 위해 열성으로 일한 결과가 마산시장에게 밉보여 애꿎게 징계를 받았으나, 그이 마음이 아름답고 삶이 빛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내용입니다...

여성 시인의 연애는 무슨 색깔일까

사랑이 대세입니다. 아니 여태껏 사랑이 대세가 아닌 적은 없었으니까 그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요, 이제 사랑 표현조차도 공공연한 게 대세인 모양입니다. 시인은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그러나 저의 는 늘 봄입니다"라 적어 시집을 보냈습니다. 시인이 여성인 때문인 모양인데, 직설·직시보다는 은유·비유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에로틱'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김경의 두 번째 시집 의 표제작입니다. "나는 슬픈 꽃의 살갗을 가진 탕아 편식주의자인 사내의 불길한 애인 애초 그대와 내가 바닥 없는 미궁이었을 때 얼마나 많은 바다가 우리의 밤을 핥고 갔는가 내 몸 어디에 앉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 미타산 저물 무렵처럼 나와 어떻게 이별할지 끙끙대는 어린 연애, 유리창처럼 닦아주고 싶은 저, 나이 어린 연애의..

박형권 첫 시집 <우두커니>을 읽으며...

장모 앞에서 마누라 젖꼭지를 빤 시인박형권의 첫 시집 . 들머리 첫 작품에서 눈이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펼쳐든 표제작 '우두커니'에서는 오히려 감흥이 적습니다. "고사리는 산에서 밭으로 옮겨 심으면 삼 년 지나야 새순을 낸다 마흔여덟에 일흔을 바라보는 어머니 똥구멍을 물고 산밭에 따라갔다가 들은 말이다 어머니 손 안 간 흙이 없고 풀 없어서 손님처럼 서 있다가 '적응하느라 그렇겠지요' 한 마디 뱉은 것이 실수였다 아이다 옛날 흙을 못 닞어서 그런 기다 잊는다? 삼 년 전 그 흙이 고사리를 놓지 못하고 자기 살점 묻혀 떠나보낸 것 산 흙이 밭 흙과 만나 교통할 때까지 밭 흙에서 어색했던 일 반쯤이나 잊는데 삼 년이 걸린단다".('흙의 이민' 부분) 처음 읽을 때는 고사리 이야기로 착각했는데, 제..

20년 활동하며 27권 시집 낸 동인

"노동문학은 살아 있다." 이렇게 또박또박 그리고 묵직하게 말하는 모임이 바로 '객토문학' 동인입니다. 이 동인이 이번에 일곱 번째 동인 시집을 냈습니다. .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놔두고 기존에 노동문학을 좀 했다는 사람들이 다들 돌아 앉아 무관심하게 있으니, 여기저기 이름을 내고 다니던 분들이 어느 날 몸과 이름을 다르게 색칠하고 나자 아예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노동문학은 노동문학 축에도 들지 않으니 '노동문학은 죽었다'는 표현이 사실 맞는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엄연히 노동문학을 하는 몇몇 그룹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노동문학은 죽었다는 말에 반대하지 않는다. 또한 다시 예전에 명성이 좀 있는 사람이 노동문학에 관심을 보이게 되자 노동문학이 다시 살아난다고들 ..

시인이 상처를 초월할까봐 겁나는 시집

"손영희의 첫 시집엔 한 여자가 시인에 이르는 아픈 시간의 궤적이 기록되어 있다." 문학평론가 정미숙이 손영희의 첫 시집 말미 해설 '오래된 정원의 합창'에서 적은 글입니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상처 받은 한 여자가 그 고통과 그 시간을 눌러 써 담은 시집이다." 표제작 '불룩한 의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칼금 선명한 빈터의 의자 하나 잘 여며졌다 믿었던 상처의 장물들이 거봐라 속수무책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내 몸의 바깥은 저리도 헐거워서 무심한 바람에도 쉽게 끈이 풀리고 누굴까 벼린 오기의 손톱을 세우는 자(전문) '잘 여며졌다 믿었던 상처의 장물들'에 절로 눈길이 쏠립니다. 시(조)에서 찾기는 그이의 '상처'는 이렇습니다. "지독한 안개가 길을 지우고 있다// 나는 나까지 지워..

각기 다른 두 시인에게서 느낀 따뜻함

경남 마산에 터전을 두고 활동하는 두 시인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시집을 냈다. 2001년 제10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배재운(51)이 첫 시집 을,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성선경(49)이 시선집 을 펴냈다. 공인되는 시력(詩歷)은 성선경이 많이 앞선다. 성선경은 이미 시집 다섯 권 을 펴냈다. 두 시인이 눈여겨 보고 나타내는 바는 사뭇 다르다. 성선경은 작품 제목을 보면 주로 자연이라 이르는 대상이 많고, 배재운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가 많다. 두 시집의 표제작 '맨얼굴'과 '돌아갈 수 없는 숲' 전문을 견줘보면 이런 차이는 뚜렷해진다. 면도를 하고 거울 앞에 서면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작은 흉터나 잔주름은 더 또렷해지지만 그래도 말끔한 얼굴이 좋다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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