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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3

잊어볼 결심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SNS에는 존경스러운 스승에 관한 글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 스승이 없다는 글도 많았다. 고통의 기억을 남긴 선생님들에 관한 얘기도 적지 않았다. 나는 혼자만 그렇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 국민학교 때 1970년 3월 국민학교 입학한 다음 날부터 맞기 시작했다. 대답할 때 왼손을 들지 않았다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필기를 하니까 당연히 “저요” 하면서 오른손을 들었는데 왼손이 아니라고 얻어터졌다. 한강철교도 있었다. 비오는 날이었는데 운동장으로 내몰렸다. 60명 남짓 여덟 살 아이들은 엎드려뻗쳐를 하고 어깨 위에 다른 친구의 발을 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강철교는 “앞으로 십 보”, “우..

스승의 날과 소설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이 쓴 소설 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328쪽이네요. 마지막 즈음 이 대목을 읽다가, 공지영이 자식들 키우면서 남의 말로 마음 많이 다쳤구나 싶었습니다. 에 나오는 엄마는 아들이 둘 딸 하나 있는데, 셋은 저마다 성(姓)이 다릅니다. 나는 이제 곧 스물이 된다.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나서, 엄마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이제 더 이상 교복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그 이전의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들이 생각났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은 알까? 그들이 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어왔는지. 그것이 상처든 감동이든 지식이든 말이야……. 엄마,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어...

순수한 촌지라는 게 과연 있을까?

교사들의 월급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역신문 기자들의 월급이 쥐꼬리라는 건 대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자라면 소득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친구나 친인척들의 모임에서 가끔 월급 얘기가 나오면 나는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편이다. 그럴 경우 십중팔구는 “설마, 기자 월급이 그것 밖에 안 될라고?”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재차 정말이라고 하면 이번엔 “에이~, 그래도 기자들은 생기는 게 많잖아.”라며 은근슬쩍 촌지 얘기를 꺼낸다.그러면 이때부터 나는 정색을 하고 ‘경남을 바꿀 개혁신문’을 창간하게 된 이유와 촌지를 받아선 안 되는 이유, ≪경남도민일보≫의 윤리강령과 실천요강 등을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기 시작한다.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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