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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공신

사후 백 년 지나서야 공신 대접 받은 곽재우 망우당 곽재우는 임진왜랑 당시 가장 먼저 떨쳐 일어난 의병장이다. 여러 전투에서도 백전불패를 기록한 대단한 인물이다. 애초 질 만한 싸움이라면 하지 않았고 이길 만하다 싶은 전투만 나섰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다음에 싸웠지 무모하게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품도 대단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찌감치 벼슬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의령 초야에 묻혀 살다가도 왜적 침략으로 백성들이 고단해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친가·처가·외가 모두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뒤집어 말하면 친가·처가·외가 모두 쫄딱 망했다.) 전란이 끝난 다음에는 언제 나섰느냐는 듯이 다시 원래대로 숨어들었다. 심지어 임금이 벼슬에 불러내었는데도 그것을 거절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귀양살이를 가기도 하였.. 더보기
정자의 공자 그림과 성당의 예수 수난 그림 선조를 업어 피란시킨 장만리공자의 일대(一代)를 그린 그림들이 함양 화림동 계곡 동호정에 가니까 붙어 있었다. 동호정은 기록을 보면 장만리(章萬里)라는 인물의 후손이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1890년대 지었다. 동호정(東湖亭)에서 동호는 장만리의 호(號)라고 한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임금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蒙塵)할 때 십수리를 업어간 공적이 있다고 한다. 장만리는 그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호성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정작 본인은 이를 못 누리고 1593년 마흔 나이로 피란 도중에 죽기는 했지만. 임금의 피란을 뜻하는 몽진은 먼지(塵)를 덮어쓴다(蒙)는 말이다. 몽진은 임금이 겪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위기 상황이다. 봉건시대 임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먼지나 티끌조차 뒤집어써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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