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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2

여행 즐기며 한 평생 봉사해 온 고명천 선생

'향기가 있는 삶' 1월 13일 오후 4시 30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 마산박물관 자료실에서 고명천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인터뷰하는 두 시간 내내 '나' 또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꼭 '저' 또는 '저희'라고 했다. 1939년 태어난 선생은 1972년부터 30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다. 그러나 얘기의 초점은 여기에 있지 않다. 가난한 이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한 선생의 학교 밖 인생이 대상이다. 1956년 고교 시절 ‘마산학생교양향상회’ 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펼치다가 경찰 요시찰 대상이 되기도 하고 대학 시절에는 학회장으로 또 ‘구인회’라는 문학동인으로 활동했으나, 당시 사회 여건은 선생으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1. 고등학생 시절 야학을 시작하고 "1..

'엄마 이데올로기'는 엄마만 짓누를까

특정 문학 단체나 특정 문인을 욕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엄마 이데올로기’, 우리 엄마한테도 강하게 작용하는 ‘엄마 이데올로기’를 한 번 확인해 보려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끌어와 쓰는 문학 작품들도, 무슨 비판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일절 없습니다. 사실은 너나없이 우리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경남의 한 문학단체가 ‘시와 어머니’를 주제로 시화전을 열었습니다. 여기 출품된 시편을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감이 됐다면, 어느 누구도 ‘엄마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어머님들은 왜 살코기는 자식들 먹이고 뼈다귀와 머리만 잡수셨을까? 당신은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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