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썸네일형 리스트형 국가가 입 막아놓고 이제와서 시효소멸? 민간인학살 시효소멸 주장은 2차 부관참시 "우리는 용서하고 싶다. 그러나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아공에서 자신의 딸을 학살당한 한 아버지가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증언석상에서 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한국 역사상, 아니 한민족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인간적이고 반인권, 반문명적인 국가범죄라면 아마도 한국전쟁 당시와 전후의 '민간인학살'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 민간인학살이란 '합법적인 재판절차 없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비무장 민간인이 대량으로 불법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어제(10일)와 오늘(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민간인학살과 관련한 두 건의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울산보도연맹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고, 또 하나는 경북 문경 석달동 민간인학살 유족들이 낸 소송이.. 더보기 국가배상 판결 보도연맹, 어떤 조직인가 어제(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울산 보도연맹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유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국가가 이제 와서 유족들이 진작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면서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판결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유형의 민간인학살이 있었지만,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은 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보다 더 조직적이고, 고의적이며 명백한 국가범죄입니다. 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와 법무부가 함께 나서서 조직한 사실상의 국가기구였습니.. 더보기 함양 민간인학살 목격자들을 만나다 "철모 쓴 군인들이 총검술하듯 찌르고 쐈다"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가채마을 김기태(76) 할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한달 후인 7월 25일께 인근 군자리 솔봉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을 직접 지켜본 목격자였다. "그날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군인들이 트럭에 한복과 양복을 입은 52명을 싣고 와 솔봉에서 학살하는 걸 봤어. 면사무소 옆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트럭을 세워놓고 사람들을 끌고 가는 모습이 뻔히 보이거든? 그렇게 한 사람씩 포승줄로 묶인 사람들을 일렬로 솔봉에 끌고 올라가 죽였는데, 내가 세어봤더니 52명이었어." 그는 "군인들이 끌려온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낸 후 총부리에 착검한 상태로 총검술하듯 찔러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넣은 후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생생하게.. 더보기 함양 마천면에도 학살 암매장터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해부터 전국의 민간인학살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암매장 터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의 재조사와 함께 암매장 터에 대한 유해발굴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함양군 마천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취재를 벌인 결과, 마천면 군자리 군자마을과 가흥리 사이에 볼록 솟아 있는 '솔봉'에서 최소 50여 명의 민간인이 국군에 의해 학살된 후 암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사건을 목격했다는 노인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초기 함양과 진주가 인민군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이던 7월 25일께 국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전형적인 불법 민간인학살 사건으.. 더보기 그가 아버지의 독립운동 경력을 숨겼던 이유 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자랑스러운 항일 경력을 철저히 비밀로 간직해왔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런 사실을 숨겼다. 비밀은 그의 나이 70에 이를 때까지 수십 년 간 이어졌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독립운동 전력을 왜 그렇게까지 숨겼을까. 그건 부친이 해방 후 권력을 잡은 이승만과 미군정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국지사 안용봉(1912년생) 선생과 그의 아들 안인영(70·마산시 내서읍)씨의 이야기다. 안인영씨는 해방 후 2년이 되던 1947년 광복절 당시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 해 창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 2주년 기념식장에 연사로 나온 아버지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옷을 입고 계셨지요. 당시 35세셨던 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수많은 청중..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