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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상고 2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⑤백성이 권력 이긴 첫경험

4월혁명을 낳은 3·15의거 지금부터는 마산 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3·15의거를 알아보도록 해요. 어른들은 3·15에 대한 기억들이 생생해요.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말로만 들었지 아득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세히 한 번 살펴보자구요.(친구들 집중 집중!!) 3·15의거는 1960년에 일어났어요.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58살이니 어느새 60년 전의 역사가 되었군요. 친구들은 3·15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지요? 김주열~~(우와 완전 짱~~!!) 이승만요!! 하고 답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구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1948년 대통령이 되고 난 후 2대 3대까지 대통령을 했어요. 이제 그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의 욕심이란..

열 일곱 학생까지 학살, 의혹이 사실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이 중·고생까지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학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2001년 이같은 의혹을 를 통해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국가기관으로부터 공식 확인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 위원장 이영조)가 최근 유족들에게 통보한 '경남 마산·창원·진해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 결정서'에서 밝혀졌습니다. ☞관련 글 : 집단학살 진실규명 결정을 보는 특별한 감회 진실위 결정서에 따르면 1950년 7월 초순경 마산중학교 4학년생이던 당시 창원군 내서읍 감천리 송규섭(17·호적상으로는 1934년생) 군이 학교 교문 앞에서 해군방첩대 요원에게 연행되었으며, 이후 행방불명된 사실과 참고인들의 진술로 보아 보도연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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