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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정세권 선생이 북촌 한옥마을을 지은 뜻은 서울 남촌 일본인 거주지의 확장 그 북진 막으려 한 정세권 선생 독립운동에 몸소 나서고 고향 고성 소학교 건립도 서울에 가면 북촌 한옥마을이 있다. 하나같이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사방을 건물로 두른 ㅁ자 모양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어서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많았는데 지금 한옥은 1920~30년대에 대단지로 지어졌다. 북촌 맞은편 남촌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1920년대에 서울 인구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아지자 북촌 고관대작들의 소유지에 눈독을 들였다. 북촌 한옥마을은 일본인들의 이런 북진을 막으려고 지은 것이다. 조선이 망하면서 궁색해진 고관대작들이 저택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는 족족 정세권이라는 인물이 사들였다. 광대한 집터를 잘게 쪼갠 다음 10~20채씩 한.. 더보기
독립운동가 추모비를 꼭꼭 숨겨놓은 이유는? 마산시 진동읍에서 지산교로 가는 도로변 산자락 모퉁이에는 낙석방지용 철망이 설치되어 있다. 산에서 돌멩이가 굴러떨어질 경우,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 철망 뒤에 꼭꼭 숨겨진 비석 4개가 있다. 그 중 3개는 조선시대 진해현감들의 선정비이고, 1개는 성격이 전혀 다른 비석이다. 비석의 상단에는 '彰義碑(창의비)'라는 큼직한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등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이 지역에서 일제의 총칼에 맞서다 순국한 8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기미독립운동시 순의 팔사', 왼쪽에는 '병술 3월 3일 구 진해인사 립(立)'으로 되어 있다. 즉 해방 이듬해인 1946년(병술년) 3월에 옛 진해현의 이름없는 인사가 세웠다는 뜻이.. 더보기
민주주의는 '기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른바 '○○기념사업회'라는 이름이 붙은 단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나 3·15, 4·19, 5·18, 부마항쟁·6월항쟁 등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단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그런 기념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려면 행정기관의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의 행사를 피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지원받은 행사는 종종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정작 '기념'해야 할 민주열사의 업적이나 정신은 뒷전이고, 돈을 지원해준 행정기관의 장이나 국회의원 등이 주빈이 되어 높은 단상을 차지하고, 민주열사의 업적은 그들 정치인이나 관료를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저는 종종 봐 왔습니다. 뿐만 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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