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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네팔 여행 12 : 람은 무사할까? 아이들은? 4월 24일부터 내리 아팠습니다. 몸살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일하고 놀고 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습니다. 25일 밤에는 앓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이불과 담요가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는데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온 몸 모든 뼈마디가 쑤시고 아렸고 머리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었으며 허리 또한 마음 먹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리 아픈 가운데 네팔 지진재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처음에는 70명 남짓 사상(死傷)이라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랬으나 숫자는 기하급수로 불어났습니다. 숨진 사람이 800명, 1000명, 1500명, 2000명 3000명 이랬습니다. 몸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사무실 나가 할일 좀 해놓고 봤을 때 그랬습니다. 지금은 사망 .. 더보기
네팔여행 11 : 박근혜한테 선물하고픈 염소 가축(家畜)은 집에서 기르는 짐승입니다.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고 네 발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짐승을 기르는 용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먹이로 삼거나 일을 부리거나 데리고 놀거나……. 진정한 가축은 이 셋을 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가축이 거의 멸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고기(바다나 강물에서 나는 것은 빼고)는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됩니다. 집에서 기르는 짐승은 대부분 가축이 아니고 반려동물이 된 지 오래입니다. 네팔에서는 가축이 살아 있었습니다. 쨍쨍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시골 농가 마당에서는 오리랑 닭들이 종종거리고 있었습니다. 시골 농가 마구간에서는 염소나 소 따위가 여물을 씹고 있었습니다. 코끼리도 여기서는 가축이어서 우리는 콩 비슷한 곡물을 싸담은 볏짚 뭉치를 .. 더보기
네팔여행 10 : 두 엄마와 세 아이의 행상길 치트완국립공원이 있는 소우라하라는 마을에 묵고 있을 때였습니다. 부처님 태어나신 룸비니를 거쳐 들어갔으니 2월 4일 즈음이지 싶습니다.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인 타루족이 사는 마을 타루올리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요 가다보니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행이 있었습니다. 여자 어른 둘이랑 아이 셋이었는데요, 철공소 같은 데서 자전거를 이어 붙인 손수레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손수레에는 우리나라 양배추 비슷한 채소와 치커리·브로콜리 비슷한 채소가 실려 있었습니다. 여자 어른 둘은 뒤에서 수레를 밀면서 가고 서너 살밖에 안 된 것 같은 가장 어린 아이는 수레에 타고 있었으며 앞쪽 자전거에는 형과 동생으로 보이는 터울이 세 살쯤이지 싶은 두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이들이 처음에는 우리보다 한참 뒤에 있었는.. 더보기
네팔여행 09 :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 네팔 치트완국립공원 근처에는 타루족이 사는 마을이 둘 있습니다. 우리는 소우라하라는 마을에 묵었는데 거기서 서남쪽으로 한 군데 있고 동북쪽으로 한 군데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돌아와서 지도를 찾아보니 동북쪽 타루족 마을이 타로울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는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는 북쪽 산악지대와는 달리 지평선이 아스라한 평원지대입니다. 네팔에서는 이 평원을 ‘터라이’라 하는데 얼마 전만 해도 말라리아모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답니다. 타루족은 1000년도 더 전부터 터라이평원 북서에서 남동으로 길게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 몽골리안인데요, 이들은 히말라야도 넘고 산악지대도 벗어나 여기 인도 국경 가까운 평원까지 내려온 데는 어떤 사연이 있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짐작하기는 쉽.. 더보기
네팔여행 08 : 따뜻한 날씨의 선물 대나무 네팔은 도시도 시골도 집을 짓는 현장이 많았습니다. 대충 볼 때 도시는 이미 지은 1층 위에 새로 2층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시골에서는 1층부터 새로 짓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네팔은 벽을 치고 나서 천장을 콘크리트로 이어붙인 다음 그것이 굳을 때까지 받쳐두는 자재로 대나무를 쓰는 것이 색달랐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처럼 세로로 잘 갈라지기 때문에 대나무는 무거운 물건을 떠받치지 못하는데요 네팔서는 길게 잘라 그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네팔 대나무는 우리나라 대나무보다 훨씬 굵게 훨씬 높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우리나라보다 많이 따뜻한 덕분이지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대나무는 집 뒤 언덕배기 따위에 무리를 이루지만 네팔 대나무는 집 뒤보다는 들판이나 산비.. 더보기
네팔여행 07 : 젊은 히말라야가 선물한 보배 해발 3200m 푼힐에 올랐다 돌아오는 트레킹에 처음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 길이 보였습니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길바닥에 무엇인가 깔려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푸르게도 보이고 희게도 보였는데, 저는 그냥 콘크리트를 쳐서 바닥에 깔았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좀 낙담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대한민국에서도 질리도록 밟고다닌 콘크리트고 아스팔트인데 여기 네팔 히말라야까지 와서도 저런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니……. 그러고 있는데 영주형 얘기가 들렸습니다. “저기 길에 바닥에 뭐가 깔려 있지? 저게 돌이야. 히말라야가 젊은 지형이라서 저런 돌이 많아. 살짝만 쳐도 편평하게 옆으로 잘 갈라져서 계단으로 쓰기에 아주 좋아. 우리나라로 치면 청석쯤 될까?” 역시 영주형이었습니다. 네팔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더보기
네팔여행 06 : 지상 최대의 개판은 어디? 네팔은 정말 ‘개판’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반드시 개가 있었습니다. 첫날밤을 묵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 도심에서도 개를 볼 수 있었고 이튿날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푼힐을 목적지로 삼아 트레킹을 하는 곳곳에도 개가 있었습니다. 오르내리는 산길에도 우리가 머무는 산골마을에도 개는 있었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나와 1월 30일 하룻밤을 지낸 두 번째 큰 도시 포카라에도 개들은 넘쳐났습니다. 포카라에서 우리는 저녁 무렵과 새벽녘에 대로를 따라 산책을 하곤 했는데요, 여기서는 개 여러 마리가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날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로 옮겨갔는데요, 거기 광장을 중심으로 바닥에 길게 벽돌을 깔아놓은 길에도 개들이 많았습니다. 여기 개들은 성지 순례 등등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더보기
네팔여행 05 : 귀족 트레킹과 더 큰 설악산 네팔에서 트레킹을 한지 네댓새 정도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살짝 미쳐버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즐겨 먹던 김치·된장·고추장 이런 것들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지는 때문입니다. 네팔에는 한국인 트레커가 많았습니다. 푼힐 트레킹을 하는 도중에도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5월 봄날 성수기하고 견줄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길 가다 만나지는 트레커들 가운데 3분의2 정도는 동양사람이었고 동양사람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점심이나 저녁 끼니를 때울라치면 옆 테이블에서 나는 김치 냄새를 심심찮게 맡아야 했습니다. 냄새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보면 김치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 옆에는 고추장을 담은 플라스틱통이 있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네팔에 가져간 반찬은 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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