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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부

팔공산 단풍을 보고 떠오른 사람들 앞의 글에서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모든 길이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는 데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팔공산의 단풍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관련 글 : 천년 고찰의 시멘트길, 누굴 위한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동화사를 찾은 보람은 있었다는 생각이다. 팔공산은 특히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마지막까지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하준수(일명 남도부)가 활동하던 산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빨치산은 대한민국에는 토벌의 대상이었고, 자신들을 파견한 북한으로부터는 끝내 버림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역사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 역시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4년까지 토벌군을 피해 산속을 헤메는 동안 여러 번 단풍으로 붉게.. 더보기
폐허로 방치된 한 혁명가 하준수의 생가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보다 더 불꽃같은 혁명가의 삶을 살다 간 하준수(1921~1955)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게바라(1928~1967)보다 더 일찍 태어나, 더 일찍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는 미 군정 시절 유격대의 작전명 남도부(南道富)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함양군의 천석꾼 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진주중학교(현 진주고) 재학시절 일본인 교사를 폭행해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유학해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졸업반 시절 일제의 학병 징집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숨어든 그는 지리산에서 동지 70여 명을 규합, 보광당이라는 항일 무장게릴라 부대를 창설합니다. 이른바 우리나라 최초의 파르티잔이었습니다. 그는 해방 후 몽양 여운형과 함께 자주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군대 창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미 군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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