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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4

우리 모두의 문제 핵피폭 유전병, 탈핵이 복지다

지방의회 최초 핵피폭 유전병 관련 발언한은정 창원시의회 경제복지여성위원회 위원이 7월 24일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피폭 대물림, 그 끝없는 고통을 함께 공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했다. 의원 본인의 생각을 내용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발표하는 자리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미군이 잇달아 터뜨린 핵폭탄으로 말미암은 핵피폭 유전병의 대물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한은정 의원의 이번 발언은 핵피폭 유전병 관련으로는 우리나라 모든 지방의회를 망라하여 가장 먼저가 아닐까 싶다. 한은정 창원시의원의 이날 5분자유발언 전문은 이렇다. 핵피폭 2세가 제외된 원폭 피해자 지원법존경하는 김하용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안상수 시장님을 비롯..

핵피폭 유전병에 대한 한은정 의원의 관심

1. 한은정 의원의 전화 연락7월 13일 저녁 더불어민주당 한은정 창원시의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예상하지 못한 전화였다. 내가 경남도민일보 7월 11일자에 데스크칼럼으로 쓴 ‘김형률특별법과 탈핵’을 읽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의논하자는 전화였다. 2. 핵피폭2세 김형률의 유전 불치병 김형률은 핵피폭2세다. 어머니 이곡지가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에 노출되었다. 다섯 살 나이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탈이 없었다. 이곡지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 김형률이었다. 전체 여섯 남매 가운데 넷째였다. 김형률은 1970년 태어나면서부터 핵피폭 유전병을 앓다가 2005년 5월 숨을 거두었다. 면역력과 호흡기능이 거의 없는 불치병(‘면역글로불린M 증가에 따른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었..

김형률 12주기-핵피폭은 인류의 미래다

1. 핵폭탄 피폭 피해자 1세 이곡지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터졌다. 전체 피폭자는 69만1500명이었고 폭사한 사람은 23만3500명이었다. 살아남은 피폭자는 45만8000명이다. 조선 사람은 7만 명이었는데 4만 명이 폭사했으며 3만 명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조선 사람들 가운데 2만3000명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7000명은 일본에 남았다. 살아남은 조선인 피폭자 가운데는 다섯 살 바기 이곡지(李曲之)도 있었다. 히로시마 후나이리가와구치(舟入川口)정(町)에서 피폭되었다. 아버지와 언니는 바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이곡지와 여동생은 살아남았다. 이곡지는 어머니 고향인 경남 합천에 돌아와 친척들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다 두 살 많은 김봉대라는 남자를 만나..

핵피폭2세 김형률의 삶과 반핵=인권

5월 22일 부산지하철공사노동조합이 불러주는 바람에 부산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저 말고도 몇몇 블로거들을 더 불렀던 모양입니다. 가기에 앞서 이메일로 일정을 받아봤습니다. 노동조합 기자회견 하나, 농성 현장 방문 하나, 그리고 김형률 생가 방문과 추모문화제 참가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김형률이라……, 부산에서 여러 모로 대단하게 활동을 펼치다가 세상을 떠난 유명 인물이 있는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산 가기로 돼 있는 날 아침 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원폭 피해자 2세’ 김형률 아시나요?” 몰랐습니다. 이름은 부산지하철노조가 보낸 메일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이가 핵폭탄 피해자 2세인 줄은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기사를 따라 읽어내려가면서 참 무심하게 살았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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