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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3

40년 전 국민학생 시절과 독재자 박정희

나는 박정희가 싫다. 5·16군사쿠데타, 10월유신, 계엄령·위수령, 비상사태·긴급조치, 중앙정보부, 공포통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객관 사실 때문에도 그렇지만 개인 경험만으로도 나는 박정희가 너무 싫다. 나는 1963년 생이다. 1970년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박정희는 이태 전인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박정희는 전체주의에 따라 사회 모든 분야를 군사화했다. 그것은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 교실에까지 관철되고 있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할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입학식 하는 첫 날, 배우지도 듣지도 못했기에 교문을 그냥 지나쳤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불러 세워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때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뒤 학교 생활에..

선생님 떠올리게 하는 30년 전 통지표

오랜만에 책장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75년 국민학교 6학년 때 받은 통지표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중2 딸 현지는 이 통지표를 두고 ‘문화재’라 하네요.) 제가 창녕국민학교 6학년 1반 57번으로 돼 있는 이 통지표를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 때 그 시절’로 제 마음이 절로 돌아갑니다. 사실 통지표나 학교 생활에 얽힌 기억들이 별나게 있지는 않습니다. 당시 탁구 선수로 차출돼 4학년부터 6학년 1학기까지 2년 반 동안은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껏 친하게 지내는 벗 영규가 그냥 한 번 더 떠오르고, 어릴 적 저 혼자 사무치게 짝사랑했던 어떤 여자아이가 기억에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오히려 ..

만우절 날 떠오른 어머니의 거짓말

만우절 하면 거짓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겪은 거짓말 가운데 가장 생생한 기억인데 아마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만우절에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저만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텝니다만. 어린 시절 ‘국민’학교 다닐 때 저희들은 창녕 옥만동 집에서 말흘리 창녕국민학교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였는데 동네 형들이랑 동기들이랑 동생들이랑 무리지어 가면 때로는 1시간 가량 걸리기도 했습니다. 등굣길은 보통 예닐곱이 한데 몰려 다녔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논밭이 이어지는 시골길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길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이것저것들을 건드리면서 가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지 싶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날이 샌 지 오래 됐으니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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