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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22

인구 3만뿐인 의령이 인물을 내세우는 까닭

2015년 5월 역사탐방 의령 곽재우 생가~백산 안희제 생가~정암진·정암철교 5월 역사탐방은 의령입니다. 의령은 경남 중심 도시인 창원과 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랍니다. 거제나 통영·남해처럼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인구가 3만 가량인 의령은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의령에서 가장 내세우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회원큰별·안영·정·이동·샘바위·자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의령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홍의장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임진왜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면서 그이들..

예술인탐방대가 만난 남명·곽재우, 집막걸리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는 경남이야기예술인탐방대에 함께한 이는 모두 다섯입니다. 문인으로는 하아무·박래녀 소설가와 손남숙 시인 등 셋이고요 미술 쪽에서 신희경·미란 화가가 동참했습니다. '이야기'와 미술은 어쩌면 궁합도 맞지 않는 색다른 결합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는데, 그 결과물을 보면 그리 잘못은 되지 않았지 싶습니다. 다음에는 성악이나 악기를 하는 음악인과도 함께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두 화가가 내놓은 그림들은, 바라보면 한 마디로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느껴지거든요. 음악인들도 '경남' '이야기' '탐방'을 하면 마찬가지 감흥이 일어 소리로 그것이 표현되지 않을까요?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그로 말미암아 다시 감흥이 솟고 말씀입니다...

가본 곳 2014.12.28

이야기탐방대로 한 뼘 더 자란 이 아이들

경남이야기탐방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경남도민일보 자회사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을 맡고 있답니다. '경남·부산 스토리 랩'의 일부로 올해는 합천 남명 조식 관련 유적과 의령·창녕 의병장 곽재우 유적, 남해 손으로 빚는 막걸리를 찾고 그 결과를 글·그림·사진으로 내놓는 일을 했답니다. 경남이야기탐방대는 청소년·블로거·예술인 셋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청소년은 탐방 주제 셋 가운데 막걸리를 빼는 대신 통영-통제영과 통영 예술·예술인을 잡았습니다. 합천은 8월 24일 찾았고 통영은 9월 14일 찾았으며 의령에서 곽재우를 만난 날은 11월 2일이었습니다. 합천에서 만난 남명 조식 선생을 아이들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잘 몰랐지만 모른다고 하면 쪽팔릴까..

가본 곳 2014.12.10

의령에 볼거리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10월 24일 전파를 탔던 창원교통방송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의령으로 발길을 한 번 돌려볼까 합니다. 사람들은 의령에 무슨 대단한 볼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의령 사는 사람들조차도 의령에 볼 것이 뭐 있느냐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알고 보면 곰탐곰탁 즐길거리가 곳곳에 박혀 있는 데가 바로 의령이랍니다. 아시는대로 의령은 의병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천강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이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령 나들이는 의병장 곽재우의 승전지인 정암진, 솥바위 나루에서 시작이 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은 부산과 양산 밀양 일대를 손에 넣으면서 서울을 향해 거침없이 북진을 하는 한편으로, 군사들 먹일 양식을..

가본 곳 2014.10.29

곽재우 이병철 생가 탐방과 세월호 유병언

며칠 전 의령에 갔더랬습니다. 담장과 건물이 모두 의젓한 정곡면 중교마을 이병철 생가도 들르고 현고수와 은행나무가 장한 유곡면 세간마을 곽재우 생가도 들렀습니다. 30분 남짓씩 머물렀는데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의병장 곽재우 생가를 찾는 발길은 드문드문 이어졌습니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생가는 보수 공사로 공개조차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찾았습니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본가·외가 재산을 모두 털어 의병을 모으고 전투에 나섰습니다. 기강나루전투와 정암나루전투에서 왜적을 무찔러 낙동강 서쪽 영남 내륙과 호남을 지켜냈습니다. 원래부터 본거지였던 의령은 물론 창녕·합천 등지에서도 용맹을 떨쳐 그이와 관련된 숱한 전설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란이 끝난 뒤 행적 또..

의령 사람들은 좋겠다 잣나무 둑길 있어서

25일 창원교통방송에서 얘기했던 원고입니다. 이번에는 여름철에도 걷기 좋은 의령 잣숲 둑길을 소개해 올렸습니다. 의령에 가면 아주 걷기 좋은 길이 하나 있습니다. 잘 가꿔져 있고 양쪽으로 잣나무가 심겨져 있어 줄곧 그늘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햇볕 따가운 여름에도 좋고 어쩌다 비가 조금씩 내릴 때도 큰 불편 없이 걸을 수 있답니다. 시작은 가례면 운암리 평촌마을 은광학교 있는 데서 조그만 개울 가례천을 따라 내려가면 마주치는 의령천 제방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의령읍 중동리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모시는 충익사까지 3.5km가량 멋진 길이 이어집니다. 우레탄으로 만든 자전거길과 흙을 깔아 만든 사람 걷는 길이 나란히 나 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양쪽으로는 나이어린 잣나무가 5~6m 높이로..

가본 곳 2014.07.29

고려 시대 신돈이 창녕 사람이라고?

[우리 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11) 창녕군 창녕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의 주제는 인물이었습니다. 신라진흥왕척경비, 술정리동삼층석탑, 석빙고 등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을 많이 품고 있는 곳이 창녕이지요. 그러나 이것들은 창녕의 뿌리와는 바로 관련이 덜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신라진흥왕척경비는 원래 창녕 빛벌에 살던 가야 세력을 정벌한 위에 들어선 것이지 토박이 가야 세력의 유물은 아니라 할 수 있거든요. 우리는 욕심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습니다. 창녕을 1박2일 일정으로 제대로 다 둘러볼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창녕 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망우당 곽재우·한강 정구·편조 신돈을 중심에 두고 창녕의 자연·역사·문화를 돌아보기로 했답니다. 2013년 12월 20..

가본 곳 2014.03.14

홍준표는 왜 전두환 조상 초상을 안 뗄까?

전두환과 그 족속이 결국 추징금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참 추잡한 집안입니다. 대를 이어 내려가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전두환은 깨끗하게 씻어내면 낼수록 좋은 그런 존재임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전두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경남도청 4층 대회의실에는 전두환 조상 초상이 첫째입니다. '향토 출신 선현'이라는 한자 제호 아래 여섯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5명과 함께 왼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걸려 있는 '영수 전제 장군'이 그것입니다. 전제라는 인물은 전두환의 14대 조상입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 봉안됐습니다. 당시 경남도지사는 이규효였습니다. 1. 권율에게 목이 베인 인물이 경남의 선현(先賢)? 초상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창녕 박진·의령..

전두환 일당의 역사 왜곡과 의병장 전제

1. 다시 눈길을 끌고 있는 전두환 요즘 전두환이 다시 사람들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전두환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원흉입니다. 1987년까지 정권을 쥐고 군사독재를 하면서 숱한 영혼과 육체를 괴롭힌 잘못이 있습니다.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금 전두환이 사람들 눈길을 끄는 까닭은 돈과 관련돼 있습니다. 전두환은 나라에 내야 할 돈(추징금)은 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야 할 돈을 부정불법하게 빼돌렸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전두환 아들이 국제 조세 회피 지역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전두환은 이처럼 골고루 죄인입니다. 전두환이 끼친 폐해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정치 경제 역사 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그런 폐해 가운데..

합천활로 ⑦ 남명 조식 선비길

1. 실천을 중시한 남명 조식 남명 조식(1501~1572)은 조선 시대 경상우도의 대표 선비다. 예(禮)와 인(仁)을 앞세운 경상좌도 대표 선비 퇴계 이황(1501~1570)과 쌍벽을 이루며 경(敬)과 의(義)를 앞세우고 실천을 중시했다. 남명은 당대에 벼슬살이는 않고 초야에서 후학을 기르고 곧은 소리 상소를 올려 이름을 떨쳤다. 그이는 여기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남명은 1558년 음력 4월 지리산을 둘러보고 남긴 에서 산을 오르는 힘듦과 산을 내려오는 손쉬움을 생각하며 선(善)을 쌓기는 산을 오름과 같고 악(惡)을 행하기는 산을 내려옴과 같다는 말을 했다. 이처럼 그이는 작은 일 하나를 하면서도 선악의 구분과 경의의 일어남을 마음에 담았다. 이런 태도는 그이가 떠난 뒤에도 제자들..

가본 곳 201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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