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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안리학살

황점순 이귀순 두 할머니 이야기 황점순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찾아뵈어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몇 년 전 진동 애양원에 계실 때 두어 번 찾아뵈었는데, 그때도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김 기잡니다. 김 기자"라고 하자 그제서야 "아, 김 기자가~" 하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27년생인 할머니는 올해로 만 93세가 되셨다. 열아홉에 진동면 곡안리로 시집와 스물둘에 아들 이상섭을 낳았으나,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과 함께 남편 이용순과 아들을 한국군과 미군의 학살로 잃었다. 그때 남편은 스물네 살, 아들은 고작 두 살이었다. 남편은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상섭이는 8월 11일 미군의 곡안리 재실 학살 현장에서 잃었다. 시조부, .. 더보기
경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 이렇게 시작됐다 노치수 경남유족회장으로부터 경남지역의 민간인학살이 알려지게 된 계기와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된 과정을 정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18년 4월 30일 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리는 경남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추모제 행사에 배포할 책자에 실어 유족들에게도 그 과정을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마침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한 번쯤 기록으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김주완의 개인적인 기억과 확인된 기록으로 재구성한다. 1999년 5월 6000여 시민주주의 힘으로 경남도민일보가 창간되었다. 1990년부터 기자라는 직업으로 살아온 나는 정말 이런 신문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자본과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취재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는 신문. 모든 기자에게 꿈같은 일 아닌가. 우리보다 10년 먼저 창간했던 .. 더보기
곡안리 민간인학살 어떤 사건이었느냐면... #학살 #민간인학살 #한국전쟁 #곡안리 [정의] 1950년 8월 1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 성주 이 씨 재실(齋室)에 피란해있던 이 마을 주민 150여 명이 미군의 공격을 받아 86명이 희생된 사건. [역사적 배경] 곡안리는 진주시와 마산시 진동면을 잇는 2번 국도 상에 자리잡은 성주 이씨 집성촌으로 전쟁 당시 1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이었다. 또한 지금은 2번 국도가 쇠락했으나 당시는 진주-마산간 가장 주요한 도로 중 하나였다. 진주가 북한 인민군에 의해 함락된 7월 31일 이전까지 이곳은 전투도 없었고, 미군이나 국군 혹은 경찰로부터 소개 조치도 없었다. 따라서 주민 대부분은 마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8월 들어 마을 주변에 폭격이 시작되자 불안해진 주민들은 마을에서 뒤.. 더보기
황점순 할머니가 결국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문득 황점순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마산 진전면 곡안리로 향했다. 출발할 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좀 불안했다. 그래도 여느때처럼 노인정에 있으려니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집은 비어 있었고 노인정에도 없었다. 알고 보니 몇 달 전 요양원(진동애양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다시 택시를 타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처음엔 못알아보던 할머니가 "김 기자입니다. 김 기자!"라고 하자 마치 아들처럼 반겨주신다. 약소하나마 용돈을 드리니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말씀 도중 기억이 약간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헤어질 땐 1층까지 따라와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황점순 할머니는 1950년 자신의 나이 스물네 살 때 남편을 보도연맹원 학살로 잃고, 미군의 곡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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