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로수용소가 왜 거제도에 있었을까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알리는 팸플릿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여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국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0여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최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