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강제진압 2

강제진압은 역사를 건 위험한 도박이다

역사는 돌발변수에 의해 만들어진다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가 '항쟁'의 상황으로 바뀌는 동기는 대개 공권력의 과잉대응과 그로 인한 돌발변수에서 비롯된다. 3·15의거와 4·19혁명은 마산 남성동파출소 앞 경찰의 발포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떠오른 학생 김주열의 처참한 시신이 도화선이었다. 5·18광주항쟁도 대학생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공수부대의 폭력에서 시작됐고, 6월항쟁도 경찰의 고문과 최루탄 난사로 숨진 박종철·이한열 학생의 희생에서 불붙었다. 지난 9·10일에 이어 다시 27·28·29일 2박3일간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를 지켜보며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경찰이 항쟁을 부르고 있다.' 조선·동아·중앙일보 등 '친정부 언론'이 연일 강경진압을 주문했고, 경찰이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며 광우병국민대책..

경찰이 실패 뻔한 강제진압 강행한 까닭

28·29일 마침내 경찰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한 무차별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전국의 전의경을 다 모아도 수만 명에 불과한 경찰이 10만 명의 시위대를 강제진압하겠다는 건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었다. 실제 이날 경찰이 강제진압을 위해 시위대 속으로 투입한 경찰도 기껏해야 200~300여 명이었다. 자칫 시위대가 과격했더라면 영락없이 고립될 수도 있었다. 실제 일부 경찰은 시위대에 고립되기도 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길을 터주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경찰 지휘부는 그들 전경을 사지로 내몬 셈이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 작전은 수많은 부상자만 남긴 채 완전 실패했다. 시위대는 전혀 진압되지 않았고 새벽까지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런 결과를 모를 리 없는 경찰 지휘부가 왜 소수의 경찰력으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