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들고 황점순 할머니 찾아뵙는 날
모처럼 반가운 소식 하나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이 지면을 통해 보도연맹 민간인학살 유족 황점순·이귀순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누명을 벗겨달라며 제기한 형사 재심청구 소송이 검찰의 재항고로 인해 7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망백(望百)이 넘은 할머니들이 끝내 판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탄식이었죠.
그 후 창원유족회 노치수 회장도 대법원에 호소문을 냈더군요.
“특히 4명의 피고인 중 제일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망 이용순의 처 황점순 할머니’는 돌볼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노파로 지금 한 요양원에서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남편의 형사 재심 재판이라도 보고 세상을 떠나실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길 호소합니다.”
이런 글이 대법관들에게 전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최근 마침내 결정이 나왔습니다. 아래는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의 결정문입니다.
“검사의 재항고 이유에 관하여 = 원심결정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재심청구인 강경석, 김정의, 황점순, 이귀순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인 제1심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조치는 정당하고, 거기에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 위반의 잘못이 없다.”
“결론 = 그러므로 재항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주문 = 재항고를 모두 기각한다.”
말은 어렵게 써놨지만, 쉽게 말하자면 ‘민간인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여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위법 소지가 있으므로 재판을 다시 하라’는 최종결정입니다.
2014년에 제기한 소송이 이렇게나 오래 걸린 것은 1심, 2심에서 모두 재심 개시결정이 났지만, 검사가 항고와 재항고를 계속하여 대법원까지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법원 또한 결정을 계속 미뤄온 탓도 있지요.
어쨌든 이렇게 재심 결정이 난 이상 남은 절차는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하루빨리 재심을 열어 무죄 판결을 내는 일입니다. 앞서 똑같은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으니 설마 다른 판결이 나올 리는 없겠지요. 그리고 그 판결에 검사가 항고를 포기하면 최종 확정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만 70년 만에 누명이 풀리게 되는 거죠.
아마 빠르면 8월, 늦어도 9월에는 마산지원에서 재심이 시작되리라 기대하는데요. 하지만 걱정입니다. ‘망 황치영의 처 이귀순 할머니’는 그나마 함께 사는 딸과 사위라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황점순 할머니는 자식이 없는데다 본인도 이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처지여서 그 소식을 어떻게 전달하고 이해시켜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저는 무죄 판결이 나는 날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할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병실을 찾아뵐 생각입니다. 혹시 압니까? 기적이 일어나 “우리 남편 무죄야, 무죄라고!” 외치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