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일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동식 소설 <회색인간>의 첫 문장입니다. 땅속 세상, 지저 세계 인간들에게 납치된 지상 세계 사람들은 극한상황에서 강제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최종적으로 남아 있던 한 가닥 희망조차 희미하게 망각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저 배고픔을 느끼는 몸뚱이 하나만 남을 뿐."
그때 어느 여성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남자는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립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소설가라며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묻습니다.
"자네는, 이곳의 모습을 그릴 수 있나?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네가 소설가라고? 글을 써낼 수 있다고? 내가 지금, 얼마나 배가 고픈지를 네가 써낼 수 있다고?"
그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죠. 배고픔에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던 사람들이 소설가와 화가에게 자신의 빵을 떼어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꼭 살아남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이 대목을 보는 순간 80년대 말에 읽었던 이태의 <남부군>이 떠올랐습니다. 남으로부터는 토벌대상이었고, 북으로부터는 버림받았던 지리산 빨치산 활동의 기록이었는데요. 한 젊은 빨치산이 종군기자 출신인 저자에게 하는 말도 이랬습니다.
"대장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
이런 걸 보면 인간에게 기록이란 어쩌면 생존을 넘어서는 가치가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아니 기록 덕분에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과학기술 또한 결국은 앞선 인류의 기록에 빚지고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말도 했죠. 선대 인류가 남겨준 경험과 지식을 기술했을 뿐 내가 지어낸 것은 없다는 뜻이죠.
어쨌거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인류에겐 소중한 유산이고, 개인에겐 즐거움과 행복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저는 글을 쓰는 일이 즐겁습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제가 신문과 잡지에 쓰는 걸로도 모자라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바로 그래서입니다.
기록을 남기는 일은 굳이 글이 아니어도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촬영할 수 있는 영상도 중요한 기록이 됩니다. 요즘 제가 유튜브 등에 영상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이 잡지 <피플파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것은 제 노후대책이기도 합니다. 100세 시대 노후 대책은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글과 영상을 남기는 일은 은퇴하지 않고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공헌감으로 행복도 느끼면서 말이죠.
이참에 여러분도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하나씩쯤 운영해보면 어떨까요? 하시겠다면 제가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