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얼마 전 시사회를 통해 김재환 감독의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봤습니다. 박정희와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신(神)처럼 떠받들고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영화는 착실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담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 당하자 망연자실하며 괴로워하는 모습까지 덤덤하게 보여줍니다.
어떠한 관점도 없습니다. 김재환 감독의 이전 영화로 볼 때 마지막에 어떤 반전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끝내 그런 장면 없이 허무하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당혹해 합니다.
감독은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랄 수 있는 농부 조육형 씨와 김종효 씨 부부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는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그들 또한 암울했던 시대의 피해자일 뿐, 그런 사람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사익을 추구해온 정치꾼들이 진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면, 바로 그게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과연 우리가 박정희와 박근혜, 그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권력을 휘두르던 정치꾼들을 욕하면서도,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와 아재, 그리고 꼰대라고 불리는 박정희·박근혜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보았는가 하는 반성이었습니다. 그분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말문을 닫고 외면하고 배척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설득과 화해는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건데, 아예 들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떤 사람과 논쟁에서 이기려 할 때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주장과 논리를 귀담아 듣고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서로 평행선만 치닫다가 결론 없이 끝나게 되죠. 반면, 내 논리를 더 많이, 더 강하게 주장하려 하기 보다는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다 보면 결정적인 부분에서 질문거리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대개 허약한 논리는 답변 과정에서 스스로 허물어지게 되죠. 또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고 호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의 주장에 대한 경청과 질문이 대화에서 훨씬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
영화 시작 전 김재환 감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를 본) 일부 젊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왜 감독이 진지하게 이분들 이야기를 들어주느냐?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이 시절과 맞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이분들은 폐기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청산해야 할 적폐다, 20~30년 지나 다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인데 왜 그걸 진지하게 듣고 있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 사실 지금 흑과 백이 도드라져 보이는 청산의 시대잖아요? 그런데 저는 청산 너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감독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문득 채현국 어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쓴 책 <풍운아 채현국>의 주인공인 그 어른은 "꽉 막힌 생각을 하는 꼰대 같은 어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40대 젊은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일단 무조건 잘 들으세요. 사람 하는 말이 다 다릅니다. 겉으로 같아 보여도 속은 저마다 다릅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를 놀리고 화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듣지 않으면 절대 속뜻을 알 수 없습니다."
상대를 제압할 생각부터 하고 있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 듣지 않습니다. 상대가 이야기하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뭐라고 받아칠까' 하는 논리만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국 싸움으로 끝나게 되죠.
저희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이를 <피플파워> 지면으로 알리는 까닭도 그렇습니다. 들어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독자님들도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박정희 부녀를 반대하는 분일수록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
※월간 <피플파워> 11월호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