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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총쇄록 답사기 (7) 세시풍속 2

음력 3월 끝자락엔 봄을 보내며 아쉬움 달랬다네 여름 앞두고 '전춘' 풍속 즐겨 형식 자유롭고 여러 번 열기도 전문 재인 불러 재주 놀음 관람 먹을거리 더해져 풍성한 행사로 세시풍속에 대한 오횡묵의 기록을 보면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동작이나 행동은 물론 주변 경관이나 사람들의 반응에 더해 본인의 느낌까지 두루뭉술하지 않고 손으로 만지듯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적었다. 그 속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130년 전 당시 우리 지역의 민속 현장을 상세하게 알려 주는 소중한 대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섣달그믐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세시풍속들이 많았다.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수세에 관한 기록들이 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섣달그믐밤 뜬눈으로 새우다 지금..

함안총쇄록 답사기 (6)세시풍속 1

새끼줄 엮어 5000명 힘겨루니 천지가 들썩들썩 줄다리기로 그해 작황 점쳐 면민 25% 참가해 장관 연출 승패 떠나 놀이 즐기기도 오횡묵은 역시 기록의 달인이었다. 여태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았던 당시 풍속을 곳곳에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오횡묵은 자기가 봤을 때 새롭거나 흥미로운 것을 자세하게 적었다. 에 적혀 있는 당대 세시풍속을 보면 지금 우리한테 잘못 알려진 것도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있다. 바로잡고 고치거나 새로 되살려야 할 것이 그만큼 된다는 얘기다. 복날에 팥죽을 먹다 팥죽은 동짓날에 쑤어 먹는다. 지금도 그렇고 에서도 그렇다. “팥죽을 끓여 삼반관속에게 나누어 먹이고 동지음을 지었다.(煮豆粥 頒饋三班 作冬至吟)”(1892. 11. 3.) 삼반관속은 관아에 딸린 아전·장교과 ..

함안총쇄록 답사기 (5) 성산산성

아라가야 점령한 신라가 쌓아 수백년 전부터 고적 인정 오횡묵 기록서도 '옛 읍터' 가치 관심 가진 흔적 보여 1991년 본격 발굴 시작해 목간·아라홍련 발견 성과 무진정·말이산고분군 등 생태역사관광 연계 가능성도 오횡묵은 성산산성을 두고 ‘옛 읍터(古邑基)’이고 ‘이름은 조남산(趙南山)’이라 했다. 그러면서 1890년 3월 2일 오전에 올라갔다. 부임 이튿날 읽은 에는 고적(古蹟)조에 ‘가야국 옛 터(伽倻國 舊墟)’로 소개되어 “북쪽 5리 성산 위에 있다. 성터가 완연하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 바로 성산산성이다. 목간의 최대 보물창고 성산산성은 1991년에 발굴되기 시작했다. 성을 쌓은 주체는 신라인이었고 연대는 600년대 초반이었다. 아라가야가 먼저 쌓았는 ..

함안총쇄록 답사기 (4) 함안읍성의 지금 모습은?

조 씨네 돌담 감나무밭 언덕 범상찮다 싶었더니 성벽이라네 산지 중심으로 자취 뚜렷 민가에도 일부 형태 유지 잡초·흙만 정리해도 옛 모습 회복 충분 1510년에 처음 쌓고 1555년에 다시 쌓은 함안읍성은 오횡묵 군수 시절에 이미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오횡묵이 1889년 4월 22일 읽은 에 7003척이라 적혀 있고 닷새 뒤 비봉산에서 내려다보며 "넉넉잡아 5리 정도(洽爲五里許)"라 했던 많은 구간이 그랬다. 다시 1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함안에 사는 사람들조차 함안읍성이라 하면 대부분 무너지고 허물어진 정도를 넘어 거의 없어졌다고 여기고 있다. 산지에 쌓은 읍성은 대부분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성벽과 치성에 더하여 마른해자와 명문 각석도 확인이 되었다. 옛..

함안총쇄록 답사기 (3) 함안읍성의 130년 전 모습

북쪽은 장대 남쪽은 달구경 명소 동서남북 4문4색 서문, 지금 '성고개'에 위치 비밀통로로 쓰다 허물어져 남문은 민관 어울리던 장소 등불 낙화 구경 등 함께해 방 내걸고 치안 살피고 사람 출입 잦았던 동문 북문은 위치 탓 이용 적도 북장대는 군사지휘소·피서지로 활용 무너지지 않은 지과정 남쪽 성벽 함안읍성은 1510년 경상도에서 삼포왜란이 터졌을 때 처음 쌓았고 1555년 전라도에서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고쳐 쌓았다. 오횡묵이 함안군수를 지낸 때는 이로부터 330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읍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889년 4월 21일 부임 행로에 읍성이 나온다. “(무진정 방향에서 오면) 지과정 오른편(서쪽)이 읍성이다. 북문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지과정 남쪽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동문은 절반쯤..

함안총쇄록 답사기 (2) 관아 건물과 공간의 재구성

기록 따라 그렸더니 선명히 드러난 읍성 진면모 옛 모습 전쟁·풍화로 상실 문헌 바탕으로 본보 재현 관광자원 활용 가치도 충분 함안읍성 안팎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은 6.25전쟁 때 모두 불탔다. 담장·주추·비석 등 돌이나 흙으로 된 것은 타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졌다. 지금은 객사·동헌을 비롯한 몇몇 누대가 이름 정도만 이런저런 그림과 글로 흩어져 있을 뿐이고 사람들 기억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을 살펴보니 130년 전 모습을 상당 부분 재현할 수 있었다. 군수 부임 행차 오횡묵은 1889년 4월 21일 함안읍성 동문 밖에 이르러 지과정에 올라 잠시 쉬었다 남문을 거쳐 성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태평루를 지나 객사에 먼저 들렀다가 동헌 정청(正廳)에 자리 잡고 부임 행사(=좌기취坐起吹)를 치른..

함안총쇄록 답사기 (1) 채원 오횡묵과 함안총쇄록

130년 전 군정 대소사 담은 수령의 흥미진진한 일기 공적 사건부터 일상까지 당시 군수 자세하게 기록 4년 역사 생생하게 담아 “역동적 활동사진” 평가 기록유산이 넘쳐나는 함안 함안은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만으로도 이미 유명하지만 기록유산도 더없이 풍성한 고장이다. 첫머리에는 와 이 꼽힌다. 는 1587년 당시 군수 한강 정구(寒岡 鄭逑)가 주동하여 136쪽 분량으로 펴냈다. 가장 오래된 현전 읍지(邑誌)로서 지역지 편찬의 모범이 되었다. 은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이 1889~93년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적은 일기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객관 정황에다 본인의 느낌까지 섞어가면서 수령의 하루하루를 기록하였다. 간송당 조임도(澗松堂 趙任道)가 1639년 펴낸 도 있다. 금라는 함안의 옛 이름이다. 함안 출..

슬몃 젖어든 자연-사천

바닷속 생물 보금자리 갯벌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사천만 갯벌 경남 최대 규모 바다의 허파 끝없이 펼쳐져 금문소공원·갯잔디 군락 아이와 게·고동잡기 체험도 ◇사천만 갯벌 경남에서 갯벌이 가장 넓고 좋은 데가 사천이다. 어림잡아 경남 전체 갯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천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사천만을 가운데에 끼고 있는 덕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천만의 동쪽 사남면과 용현면 일대 갯벌이 산업단지로 매립되었어도 그 풍치와 경관은 여전히 대단하다. 바닷가에 바짝 붙어 놓여 있는 도로를 따라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해 질 무렵에 가면 사천대교 이쪽저쪽으로 석양에 붉게 물든 갯벌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게다가 서쪽에 있는 광포만 일대는 갯벌이 아직 옛 모습 그대로다. 아름다운 경관을 감..

가본 곳 2021.10.26

슬몃 젖어든 자연-밀양

억새와 습지 한눈에 가을을 맘껏 들이키고 삼랑진 탁 트인 풍광 '여백의 한가로움' 가득 수리시설·적산가옥 등 역사 흔적 고스란히 ◇삼랑진생태문화공원 삼랑진은 세(三) 물결(浪)이 만나는 나루(津)다. 서쪽에서 낙동강이 흘러오고 북쪽에서 밀양강이 내려오며 남쪽에서 남해 바다가 밀물 때 올라온다. 삼랑진생태문화공원은 밀양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아래 강변에 있다. 물과 물이 부딪히면 흐름이 느려진다. 그러면서 여태 싣고 왔던 토양 성분과 유기물질을 내려놓게 된다. 공원은 이것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면서 만들어진 강변 둔치에 들어서 있다. 탐방의 시작점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낙동대교 다릿발이 우람하게 내리뻗은 자리다. 주차장과 운동장, 잔디광장을 비롯해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휴일 한나절에 ..

가본 곳 2021.10.25

슬몃 젖어든 자연-창원

산·바다·호수 하나 모자람 없네 람사르협약 인정한 습지·갯벌서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종 서식 진해만 둘러친 울창한 생태숲 사람 넉넉하게 품어 안아 아늑 ◇봉암갯벌 봉암갯벌과 맞닿은 마산 앞바다는 90년대만 해도 죽음의 바다였지만 지금은 사람이 들어가 수영해도 될 정도로 수질이 좋아졌다. 2000년대부터 행정기관·환경단체·지역주민·기업체가 힘을 모아 그 갯벌의 생명력을 되살려낸 덕분이다. 도심 한가운데 많이 오염돼 있던 갯벌도 지역사회가 역량을 모으기만 하면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본보기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08년 열린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가 봉암갯벌을 공식 방문지로 꼽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2009년 '잘 가꾼 자연유산'으로 선정했다. 이어 2011년에는 국토해양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

가본 곳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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