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서울사람들이 창원에 데모하러 오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9. 4. 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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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까지 기자 노릇을 해오면서 가장 답답하게 여겼던 일이 바로 '민간인학살' 문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국가입니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범죄자가 되어 수십만 명의 국민을 '불법'으로 집단살해한 사건이 민간인학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제12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당시 단지 인민군에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만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산골짜기에 끌고 가 집단총살하거나 바다에 수장시켰습니다. 아무런 재판절차도 없었습니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 발굴된 피학살 유해들. 모두 팔이 뒤로 꺽인 채 엎어져 있었다. @김주완


헌법은 또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제13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은 아들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죽이거나, 형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며 아우를 죽인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나치의 유태인학살에는 분노하면서도…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최소한 수십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국가범죄에 대해 정부는 물론 걸핏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쳐 온 시민사회단체들마저 관심을 갖는 데가 거의 없었습니다. 나치독일의 유태인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는 분개하면서, 정작 우리나라, 바로 이웃이 겪은 비극에는 침묵해왔던 것입니다.

심지어 저는 10년 전인 1999년 한 시민단체에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제안했다가 "아직 레드컴플렉스가 심한 우리나라에서 그게 잘 되겠어요?"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자 신분이긴 하지만,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가 창립하는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고, 대통령선거를 취재하는 정치부기자의 신분으로 노무현 후보 등을 붙잡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간인학살 문제만은 꼭 좀 해결해달라"는 부탁까지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되어 반세기가 훨씬 지난 뒤에야 서서히 진상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몇몇 학자들과 기자, 그리고 지역사회운동가, 유족들이 모여 힘겹게 결성한 '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는 지금도 서울역 맞은편 후암동 산비탈에 있는 한 낡은 건물에 세들어 힘겨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후암동 산비탈에 있는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사무실 출입구. @김주완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유족들에겐 학살총수이자 인간백정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드는가 하면,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과거사 관련기구를 통폐합하겠다느니 하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급기야 최근에는 법조비리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재교 인하대 교수와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임시정부 법통을 훼손해온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대통령 추천으로 진실화해위원으로 임명하기까지 했습니다. 노골적으로 진실규명에 발목을 잡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이런 사람을 임명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이미 진실규명 결정이 난 사건에 대해 국무총리가 재심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17개 과거사 관련 법안 개악안을 제출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그동안 진실규명 결정이 났던 수많은 민간인학살사건과 민주화운동에 색깔론을 뒤집어씌우려 할 게 명백해 보입니다. '양민이 아니고 빨갱이여서 죽였다'는 논리를 들고 나올 게 뻔합니다.

'역상경투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범국민위원회는 한나라당과 현 정권의 이런 진상규명 발목잡기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국회앞에서 집회를 해봤자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게 분명합니다. 아직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단체의 힘이 미약하고, 유족들의 피해의식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개악 법안을 제출한 권경석 의원이 있는 창원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지역단체나 사람들이 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상경투쟁'을 가는 일은 흔했지만, 서울 사람들이 지역에 오는 '역상경투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에서 버스 한 대를 대절해 창원으로 옵니다.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회 회의 모습.


25일(토) 오후 3시 서울에 있는 범국민위원회 관계자들과 전국의 유족들이 창원시 명곡동 한나라당 경남도당과 권경석 의원 사무실 앞에 모입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는 상남동 민주노총 경남본부 회의실에서 '한나라당의 진상규명 발목잡기와 지역사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립니다.

블로거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이 집회에는 처음으로 민생민주창원회의가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주말인데다, 아직 피해의식이 남아 있는 유족들이 이런 집회에 나서길 꺼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예로 볼 때 신문, 방송사들도 별로 중요하게 다뤄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기자들의 휴일이어서 취재가 제대로 될 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경남과 부산지역에 계시는 블로거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이날 집회와 토론회를 공동으로 취재해 널리 알려주십시오. 저도 그날은 휴일이지만 하루를 몽땅 털어 이 집회와 토론회에 참여하고 취재도 할 예정입니다. 블로거 여러분께서 필요하시다면 전국에서 모인 유족대표들과 간담회도 주선하겠습니다.

이날 참석하시는 유족분들 중에는 당시 해군소령의 신분으로 마산형무소에 복역중 함께 살해된 분의 따님도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갖가지 사연을 갖고 계신 유족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분들과 인터뷰도 가능합니다.

25일(토) 오후 3시 창원 명곡동 한나라당 앞과 5시 민주노총경남본부에서 많은 블로거 님들을 뵐 수 있길 빕니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발목잡는 권경석 의원 규탄집회

일시 : 2009년 4월 25일(토) 오후 3시
장소 : 창원시 명곡동 한나라당 경남도당 및 권경석 의원 사무실 앞

토론회 '한나라당의 과거사 진상규명 발목잡기 시도와 지역사회의 역할'

일시 : 2009년 4월 25일(토) 오후 5시
장소 : 창원시 상남동 민주노총 경남본부 회의실(경창상가 맞은편)
발제 및 토론자 : 허상수(진실과정의 포럼), 이창수(새사회연대 대표), 심규상(오마이뉴스기자), 최승호(경산신문 대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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