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남과 부산의 걸을만한 장소 서른다섯 곳

김훤주 2009. 2. 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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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시인 동길산 산문집 <길에게 묻다>  


“들길은 불뚝성질의 길이긴 해도 무른 길이다. 푹신한 길이다. 대들어 저항하는 길이 아니라 배꼽 잡게 웃기면서 저항하는 길이다. 멱살 잡고 저항하는 길이 아니라 맞다 맞다 동조하면서 저항하는 길이다.”(14쪽, ‘합천 밤마리 들길’)


“오솔길은 오솔길을 둘러싼 숲은 까탈스럽지 않다. 따지지 않는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자기를 자기 방식으로 내보이는 대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래도 받아들이고 저래도 받아들인다.”(92쪽, ‘해운대 청사포 오솔길’)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길이 누구에게는 의미가 심장한 길이고 나는 휑하니 지나가는 길을 누구는 눈물 글썽이며 간다. 길은 어느 길이든 다감하고 어느 길이든 누군가에게는 외가로 가는 길이다.”(121쪽, ‘최계락 외갓길’)


고성에 사는 20년 된 시인 동길산 씨가 산문집 <길에게 묻다>를 펴냈다.


1부서는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과 사천 선진리성 성길 삼천포 노산공원 돌나무길 마산 산호공원 ‘시의 거리’ 남해 다랑이 마을 논길 등 열여덟 군데를 다뤘다.


2부에서는 산청 산천재와 김해 천문대를 비롯해 함안 채미정 의령 설뫼 영도다리 양산 삼수리 등 열일곱 곳을 담았다. 덩달아 자연과 지리와 문화와 역사도 담겼다.


짧은 문장이 이어지는 문체가 꽤 인상 깊다. 산지니. 240쪽. 1만원.


올 1월부터 문화체육부 소속으로 책 소개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번에 동길산 시인의 산문집 ‘길에게 묻다’를 썼습니다.


아쉬운 구석이 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분량이 제한돼 충분히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애써 책을 내신 이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그런 미안함을 가시게 하려고 합니다. 제가 채 쓰지 못한 내용을 조금이나마 붙여 넣어야겠지 싶은 것입니다.


먼저 기사에서 빠진 장소입니다. 영주동 시장통 함안 말산 고분길 진주 경남수목원 침엽수길 ‘밀양’역 광장 태종대 등대길 하동포구 물길 부산 이기대 해안길 거창 빼재 부암동 굴다리 부산 영락공원 묘지길(1부).

최계락 외갓길. 산문집에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


2부에서는 낙동강 하구의 노을 범일동 증산 영도다리 지리산 백무동 창녕 비봉리 유적 사천 굴항과 군위숲 양산 삼수리 진해 웅천 도요지 거제도 외포 마산 중앙부두 고성 대가저수지가 빠졌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떻게 눈치를 채셨겠지만, 1부는 사람 손때가 그래도 덜 묻는 곳들이고요 2부는 사람 얘기 갈피갈피 스며들었을 그런 장소들이 주를 이룹니다.(물론 딱 맞지는 않습니다만.)


‘보도자료’에서도 몇 마디 가져옵니다.

“모든 사유는 걸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에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동차를 타고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걸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와 풍요로움이 있다. 걷기는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고, 지치고 찌든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이다.”

거창 빼재. '길에게 묻다'에 들어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


문체에 대한 동길산 시인의 ‘꿍꿍이’도 보도자료에 적혀 있습니다.

“짧은 문장은 속도감을 준다.” “현재형은 생기가 있다. 생동감을 준다.” “남보다 먼저 안 웃기. 글에도 표정이 있다면 표정관리가 잘 된 글이 좋은 글이리라.”

산문집 <길에게 묻다>를 읽으면, 동길산 시인의 이 같은 표현이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떻느냐고요? 제가 어떻게 여긴다는 것이 무슨 얘깃거리가 되겠습니까만, 저는 짧든 길든 일부러 그리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글은 결국,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바로 그 대상이 요구하는 그런 식으로 글투가 만들어지면 그만이겠다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제 생각일 뿐이고요, 보도자료는 이렇습니다. 아마 여기에 더 많은 진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문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책은 비록 산문집이기는 하지만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겠다.”
아마도, 김훈 글투를 좋아하는 이들은 동길산 시인의 글투도 좋게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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