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문열 황석영 삼국지는 안 보는 까닭

김훤주 2009. 2. 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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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자기 이름으로 삼국지를 펴내고 ‘평역’했다고 했습니다. 황석영도 마찬가지 취지로 ‘나관중 지음’에 ‘황석영 옮김’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문열.황석영 이름이 달린 삼국지는 읽지 않습니다.


짐작건대, 이문열은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를 의식하면서 삼국지를 썼을 것입니다. 월탄을 뛰어넘는, 그런 삼국지가 돼야 한다는 식으로요. 제가 월탄 삼국지를 다섯 번 읽기는 했지만, 하도 오래 된 일이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양장본이고 세로쓰기로 돼 있고 표지가 거뭇거뭇하고 딱딱한 월탄 삼국지는 모두 다섯 권이었는데, 30년 전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밤새워 가며 읽었더랬지요. 월탄 삼국지는 ‘촉한 정통론’에 아주 충실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글투가 아주 부드러웠어요.  


저는 이문열 삼국지가 월탄 삼국지와 달리 위나라 조조를 높이 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시각은 일본에서 이미 한 때 유행을 이뤘다고 하지요. 황석영은 이문열 삼국지를 명백하게 의식하고 삼국지를 썼습니다. 황석영 삼국지는 보나마나 촉한 유비를 색다른 방식으로 높이 칠 것입니다.


10권짜리 황석영 삼국지.

 

2004년 7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우리 경남도민일보가 모신 적이 있습니다. ‘고구려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는 주제로 초청 강연을 했지요. 강연을 마치고 술집에 모시고 갔습니다. 거기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황석영이 딸려 나왔습니다.

 

이이화 선생 말씀입니다. “황석영이 삼국지를 번역했다고? 거짓말 그만 하라 그래. 나도 한문본 번역을 못해. 그런데 지가 무슨 한자를 알아서 ‘삼국지연의’를 우리말로 옮겨? 내가 자꾸 이러니까 황석영이 이제 자리까지 피해. 하하하.”


그럴 것입니다. 황석영은 1943년 생입니다. 이이화 선생은 1937년 생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문열은 1948년 생입니다. 게다가 황석영과 이문열은 소설가이지만 이이화 선생은 직업이 (한자를 잘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학자입니다.

모든 얘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이이화 선생보다 이문열과 황석영이 더 나은 한문 실력을 갖췄다고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문열과 황석영은 앞서 나온 월탄 삼국지라든지를 주워 모아 여기저기 베꼈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마찬가지 10권짜리 이문열 삼국지.

물론 이문열 삼국지는 이문열 냄새가 나고, 황석영 삼국지는 아무래도 황석영 냄새가 당연히 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요? 윤문(潤文), 글 가다듬기만큼은 아주 그럴 듯하게 해냈다, 이리 여기시면 간단하지요.


이런 기억도 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황석영을 불러내어 그이의 삼국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자로 기억되는데, 진행자가 삼국지를 쓴 동기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대답 첫 대목이 이랬습니다. “노후 대책으로 썼는데…….”


물론 얘기를 재미나게 풀려고 떨어보는 너스레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만 바로 그 장면에서 텔레비전을 끄고 말았습니다. 황석영의 노후(老後)를 위해서라면, 저까지 그런 책을 살 까닭은 없겠다 싶어서지요.


그러면 요즘 들어 나온 책 가운데에는, 중문판 ‘삼국지연의’를 진짜 번역한 것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있습니다. 한학자이면서 시인인 김구용(1922~2001) 선생이 솔출판사에서 펴낸 삼국지연의가 그것입니다.


김구용 선생이 74년 완역판을 처음 내었는데, 그 때 번역에 20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81년 개정판을 내었고 그 뒤로도 틈날 때마다 손질을 해서 다시 20년이 지난 2000년에 새로 개정판을 내었습니다.


2000년 개정판이 지금 말씀드리는 그 책인데요. 글이 아주 곱고 깔끔합니다. 쓸데없는 손찌검이 거의 없고 아주 절제돼 있다는 느낌도 많이 줍니다. 이러고 나니까, 이문열 황석영이 삼국지연의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가 막 궁금해지네요.


김훤주

삼국지연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나관중 (솔,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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