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촘스키를 읽고 이명박 욕하기를 멈췄다

김훤주 2009. 1. 3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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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태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엉터리 영어를 말하거나 우리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맞지 않게 글을 쓰거나 하면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하며 비웃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인 줄 이제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운동을 그르치는) 범죄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배집단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대다수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 마는 길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촘스키를 읽고부터입니다. 저는 촘스키를 80년대 대학에서 변형생성문법이론을 창시한 언어학자로 교과서를 통해 만났습니다. 그러고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90년대 들어 문득 보니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가로 더 알려져 있더군요.

어쨌든 촘스키는 그야말로 노익장(老益壯)인데(1928년 생입니다요.), 우리나라에는 그리 더디 사상가나 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활동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부터 사회 정치에 대해 왕성하게 발언해 온 분이랍니다.

1.
1월 16일에 발행된 책입니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입니다. 2006년과 2007년 이태 동안, 미국에서는 이름이 나 있는, 바사미언이라는 인터뷰어랑 얘기를 나눈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장영준이라는 영어학자가 옮겼고 한겨레 그림판을 맡고 있는 장봉군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책 74쪽과 75쪽에서 바사미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욕설을 사용해 부시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촘스키는 77쪽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로브는 ‘뉴클리어nuclear’를 ‘누클러’라고 어눌하게 발음하거나, ‘misunderestimate’와 같은 희한한 어휘를 구사한다거나, 가짜 텍사스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진보 진영의 비판가들이 부시를 능멸하기를 원하지요.”

로브(Karl Rove)는, 옮긴이가 붙인 각주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조직 활동가이고, 부시 대통령과 30여 년간 교류하며 그를 텍사스 주지사와 대통령에 두 번씩 당선시켰으며, 부시 정부의 최고 선거 전략가이면서 실세였습니다.

이어집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에 부시는 어쩌면 문법적 실수를 저지르도록 훈련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마 예일대학을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조롱하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2.

여기부터가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봐라, 미국을 움직이는 저 자유주의자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프랑스제 와인을 마시고 파이를 먹으면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못한다’라고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과 더불어 이런 부시를 좋아하게 됩니다. 사실 알고 보면 부시는 나무들을 돌보러 자신의 목장으로 돌아갈 억만장자인데도 말입니다.”

“부시의 어눌함 따위는 모두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부시의 그러한 고도의 이미지 전략에 보탬이 되고 극우보수주의자의 성공을 돕고 싶다면, 조지 부시의 어눌한 발음을 계속 놀리고 조롱하면 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에 한기가 돌았습니다. 저들은 자기한테 돌아오는 욕이 몇 바가지인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하기는, 그럴만도 합니다. 세상을 지배할 수만 있다면, 다른 무엇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3.
그러면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도 부시한테 배워서 일부러 문법에 어긋나게 얘기하고 글을 써서 이른바 서민들이랑 친근하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 아닌지요.

촘스키의 발언을 하나로 모으면, “부시들은, 사실은 귀족이면서도 서민들에게 친근하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문법을 틀리고 엉터리 발언을 하곤 한다.”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규범에 맞느냐 여부가 아니라, 인심을 얻느냐 여부입니다.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덜 중요한) 이미지를 (주로) 좇습니다. 그러니까 이미지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내용이 아닙니다. 또다른 이미지입니다.

부시가, 이명박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저렇게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맞춤법 따위가 무슨 문제겠습니까? 앞으로는 이명박의 무식 또는 무지를 욕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일부러라도 제가 무지하고 무식하다고 얘기하고 다녀야겠습니다.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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