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철거민 참사에서 학살의 광기를 느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 2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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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놈들(미군-기자 주)이 가는 곳마다 부녀자를 강제로 끌어다 릉욕하여 마음대로 겁탈하고 있는 것이다. 놈들은 경상남도 가산리(진주 외곽의 한 마을로 추정)에서 농가에 기어들어 부녀자들을 야수같이 강간한 후 수십 명의 부녀자들을 땅크(탱크)와 트럭에 집어 싣고 마산방면으로 도망질쳤다. (중략) '국군' 장교들은 미국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하면서 피난간 부녀자들을 징발하여 제공할 것을 병사들에게 명령하였으며, 미국놈들의 겁탈을 당하지 않은 여성은 거의 없다고 말하였다. (중략) 밀양경찰서장이란 놈은 밀양에 1개소, 상량전(삼랑진의 오기일 듯)에 2개소의 소위 '미군 전용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반 민가의 부녀자들을 총칼로 위협하여 끌어다가 미국 야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최근 다시 꺼내 읽은 신경득 교수의 <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에 인용된 1950년 9월 4일자 북한 <로동신문>의 기사 중 일부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읽은 다음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전 매춘부, 한국정부는 미군상대 성매매를 권장했다(Ex-prostitutes say South Korea enabled sex trade near U.S. military bases)'는 기사가 크게 보도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보도된 기사. http://www.iht.com/articles/2009/01/08/asia/08korea.php


1월 8일자 이 신문은 1960년 국회 청문회 기록 등을 근거로 한국정부가 일종의 '매춘 중개업자' 역할을 했음을 폭로하면서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강간 범죄나 위안대 운영은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아니다. 한성대 김귀옥 교수는 2002년 2월 '한국전쟁과 여성 : 군 위안부와 군 위안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예비역 장성들의 회고록과 참전군인의 증언, 육군본부가 1956년 편찬한 <후방전사> 등을 근거로 국군이 '고정식 위안소'와 '이동식 위안소' 등을 설치, 운영했음을 밝힌 바 있다.

최근 읽었던 자료 중 또 하나의 충격적인 내용이 있다.

"민간인 70~120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이 집단으로 총살되는 일이 있었다. (중략) 군인들은 마천의 민보단 대원들을 시켜 흙구덩이를 파게 한 후, 그 구덩이 앞에 끌고온 민간인들을 3명씩 세워 총검으로 가슴을 찔러 구덩이 속으로 넘어뜨렸다. (중략) 그들은 모두 한 구덩이에 파묻었는데, 파묻을 때 많은 이가 죽지 않아 신음을 내기도 하였다. 흙을 다 덮은 후 토벌군들은 흙 속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고 한다."

"두 명의 남자 빨치산과 한 명의 여자 빨치산이 죽어 있는 게 보였다. 여자 빨치산은 피가 빠져 얼굴이 보름달처럼 하얀 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봉쇄선 안으로 들어와서 이 말을 하였다. (중략) 그 때 그 말을 들은 205경찰부대 두 명이 그곳으로 달려가 총검으로 유방과 XX를 잘라와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며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위 대목을 읽으면서 머리가 쭈뼛 서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이야기는 함양군 마천면의 <마천향토지>에 기록돼 있는 사례다. 모두 우리 한국군과 경찰이 저지른 일들이다. 정말 이쯤 되면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 자체가 싫을 정도다.

IHT의 지적을 여기에도 그대로 대입하면 한국은 최근 이스라엘군의 민간인학살이나 일제의 각종 학살 만행, 생체 실험 등 잔학행위에 대해서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이런 반(反)인류, 반인권 범죄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서는 결코 문명국가, 법치국가가 될 수 없다. 17·8세기 경찰국가에서나 있을법한 특공대 투입에 따른 철거민 참사가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국가권력의 인권·인명 경시 풍조에서 말미암은 바가 크다.

나는 이번 철거민 참사에서 1950년대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군경토벌부대의 광기를 본다. 2009년 1월 김석기 서울경찰청장과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의 특공대 투입작전에서 1951년 2월 산청·함양·거창 민간인 살육극을 벌인 오익경 9연대장과 한동석 1대대장의 '견벽청야' 작전을 발견한다. 한국에 사는 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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