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노인들이 윗채 놔두고 아랫채 쓰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08. 12. 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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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취재차 시골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이 많은데요, 요즘 날이 추워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번듯한 윗채를 그대로 비워둔 채 낡고 다 쓰러져 가는 아랫채 쪽방에서 기거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더라는 겁니다.

처음엔 이상한 생각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랫방으로 쫓겨났나? 아니면, 그냥 사랑방에 있는 게 익숙해서…?

그런데, 어느날 하루 해가 지고 난 뒤 어두운 시간에 한 어르신을 찾아뵈었는데, 거기도 아랫채에 기거하고 계시더군요. 윗채는 아예 불도 꺼져 있었고, 할머니도 아랫방에 함께 계셨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계신 상황이라면 제가 짐작했던 이유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함양군 백전면의 한 할아버지네 아랫방.


함양군 수동면의 한 할아버지네 아랫방.


그제서야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왜 윗채를 놔두고 여기 아랫방에 계세요?"
"아, 그거야, 기름값이 무서워서 보일러를 땔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냥 겨울에는 아랫방에 군불 때고 여기서 사는 거지 뭐."

아하! 그제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윗채의 방을 쓰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분의 경우 어김없이 윗채에도 아직 장작을 때는 아궁이가 남아 있는 가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위의 경우처럼 아궁이가 남아 있는 집에서는 이렇게 장작이라도 때고 삽니다. 하지만, 읍내 도시지역에서 단칸 셋방살이를 하는 노인들은 아궁이조차 없어 장작이나마 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뵈었던 한 할머니는 주무시기 전 전기장판을 꽂아 이불 속이 따뜻해지면 다시 스위치를 끈 후 주무시기도 하더군요.

함양읍의 한 변두리에 세들어 사는 할머니의 단칸방 입구.

할머니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을 쓰고 계셨습니다.


도시에 계신 자녀분 여러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일러 놔드리는 것만으로 효도는 아닙니다. 이왕 해드리려면 기름값까지 두둑히 보내주세요. 아니, 그러지 말고 이런 겨울에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직접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드리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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