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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풍운아 채현국'을 쓴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5. 1. 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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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蔡鉉國, 1935~)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약 10여 년 전 이 분에 대한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양산에 가면 지금의 경남대학교가 박종규(전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씨 소유로 넘어가기 전 이 대학을 운영했던 노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근·현대 지역사(史)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지인이 준 중요한 정보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잊어버렸다.


그런데 2014년 초 이분의 인터뷰가 <한겨레>에 실렸다. 인터뷰의 울림은 컸다. 7만여 명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공유하며 그의 어록을 인용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지. 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와 같은 그의 수많은 어록은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없이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부끄러웠다. 내가 사는 이곳 경남 양산에 계시는 어른이 내 게으름 탓에 서울 매체를 통해 먼저 알려진 것이다.


채현국 이사장과 필자. @김구연 기자


그로 인한 부채의식 때문일까. 채현국이란 인물과 그의 삶을 더 탐구해보고 싶었다. 한 때 24개 기업을 경영하며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巨富)였으나, 지금은 특별한 소득도 없는 신용불량자. 그 많던 재산은 다 어떻게 했을까? 재벌급 부자로 살다 어느 순간 무일푼에 신용불량자로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라면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가진 학교법인 이사장이니 재산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학교법인은 말 그대로 법인일 뿐 개인 재산이 아니다. 사고 팔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거기 이사장이라고 해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학교 회계에서 이사장이 돈을 한 푼이라도 가져가면 횡령이 된다.


물론 부인이 국립대학 교수 출신으로 정년퇴임했으니 부인의 연금이라든지 기본 수입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것 자체는 그리 곤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예전처럼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다든지, 민주화운동 진영에 거액의 후원을 해준다든지 그런 선심은 쓸 수 없을 터. 서울에 오래된 주택이 있지만, 그는 양산 개운중학교 뒤편 햇볕도 들지 않는 작은 골방에서 침대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 그 사람이 한 때 우리나라에서 세금 납부액이 10위권 안에 드는 거부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역신문 기자의 의무감으로 그의 삶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풍운아 채현국 표지.


내가 재직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의 비상근 감사로 계시는 환경운동가 이인식 선생을 통해 채현국 이사장과 연락이 닿았다. 2014년 8월 28일 그를 경남도민일보로 초청해 '쓴 맛이 사는 맛, 그게 함께 사는 길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이어 9월 4일 양산으로 그를 찾아갔다.


이 책은 모두 4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인터뷰마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6~7시간씩 이어졌다.


오척단구 거한, 당대의 기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 가두의 철학자,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 파격의 인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내가 보기에 그는 거부에서 신용불량자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인생을 살아온 시대의 풍운아(風雲兒)였다. 그만큼 그의 삶은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


채현국 이사장은 인터뷰 조건으로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 것’을 내걸었다. 그래서 들은 이야기 그대로, 조사한 내용 그대로, 사람들이 그를 언급한 그대로 풀었다.


2015년 1월 7일 김주완


※이 글은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의 저자 머리말입니다.


풍운아 채현국 - 10점
김주완 지음/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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