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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이 독수리 최대 월동지인 까닭

김훤주 2014. 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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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새는 정말 날지 않고 싶다

 

경남 고성은 여러모로 유명합니다. 그런 가운데에는 독수리도 있습니다. 한반도 최대 독수리 월동지역입니다.

 

주로 몽골에서 살아가는 독수리는 지구에 2만마리 정도 있다고 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반도를 찾는 독수리는 2만 마리의 10%인 2000마리 가량이고, 이 가운데 600마리 남짓이 여기 고성에서 겨울을 납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몽골은 겨울이 너무 춥고 따라서 먹이도 없기 때문에 따뜻한 남쪽으로 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자유롭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속도는 시속 50km정도라고 하는데, 이 날아다니기가 그렇게 쉽기만 하겠습니까? 새들한테 고역이 바로 이 날아다니기입니다. 그래서 몽골에서 한반도까지 날아올 때에도, 지친 날개를 쉬어야 하기에 두 시간에 한 번꼴로 뭍에 내려온다고 합니다.

 

내려앉기 시작한 독수리들.

 

이토록 먼 거리를 날아오는 까닭이 바로 먹이를 얻는 데 있다니, 그야말로 독수리 일생 참으로 가련합니다. 몽골에 그대로 남아 있자니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겠고, 해서 이판사판으로 날갯짓을 해서 한반도까지 날아온다니 죽지 못해 벌이는 고역 가운데 으뜸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 고성 독수리는 창녕 소벌(우포늪)에 모이는 100마리 독수리나 김해 화포습지에 모이는 200마리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어리고 약한 존재들이라니 더욱 가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수리한테는 들판이 너르게 펼쳐지고 마실 물까지 갖추고 있는 강원도 철원 일대가 한반도에서 가장 살만한 터전인데요, 거기서 먹이 경쟁에 처진 녀석들이 더 지친 날갯짓을 해서 찾아오는 데가 바로 경남의 고성·창녕·김해라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이렇게 많이 내려앉았습니다.

 

2. 독수리 아빠를 아시나요?

 

고성에 이처럼 독수리가 많이 모이는 데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고성 철성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시는 김덕성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제는 ‘독수리 아빠’로 불리는 김 선생님께서 10년 넘게 전부터 이 지치고 힘빠진 독수리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장만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돼지 비계 따위인데 본인 주머니를 털거나 이웃·친지가 십시일반으로 장만해 주는 정성으로 독수리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조금밖에 고성을 찾지 않던 독수리를 해를 거듭하면서 숫자가 불어나 이제 600마리를 웃돌게 됐다고 합니다.

 

 

해딴에가 고성을 찾아 어린이 겨울 철새 탐방을 벌인 가장 큰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8일 해딴에 일행이 고성 철성중학교 앞쪽 논을 찾았을 때 10시 30분에 이르러 불쑥 떠오른 해를 한 쪽으로 삼은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독수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40명 되는 아이들은 타고 온 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우와, 이야” 하는 감탄사를 입에 달고 있었습지요. 독수리는 논바닥에도 있었습니다. 열 마리가 살짝 넘는 정도였는데, 독수리보다 까마귀가 더 많았더랬습니다. 

 

 

이렇습니다. 독수리는 철새고 까마귀는 텃새입니다. 텃새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고 까마귀는 머리가 좋은데다 무리 지어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독수리가 자기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들어온 독수리를 쫓아내기 위해 독수리를 공격해대는 것입니다.

 

많이 자란 큰 독수리에게는 무리 지어 달겨들고요, 아직 작은 어린 독수리에게는 까마귀 한 마리가 대적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자니 독수리들이 성가신 모양인지 죄다 하늘로 날아올라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독수리 아빠는 논바닥에 먹을거리를 잔뜩 깔아놓았고요.

 

논바닥에 깔아놓은 먹이를 독수리 쪽으로 던지고 있는 김덕성 선생님.

 

김덕성 선생님은 전혀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아이들을 버스에 오르게 했습니다. 독수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을 숨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살펴보기 좋게 버스를 논이랑 평행이 되도록 돌려세운 다음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며 독수리를 살펴보게 했습니다.

 

버스에서 설명을 해주는 김덕성 선생님. 그 오른편으로 이날 뜻밖에 현장에서 만난 한겨레 최상원 기자가 보입니다.

 

MBC경남에서도 취재를 나왔습니다.

 

독수리들이 떼 지어 하늘을 빙빙 도는 까닭은 동료들 불러모으기 위해서다, 독수리도 차례와 예절이 있어서 우두머리가 내려앉기 전에는 절대 내려앉지 않는다, 먹을 때도 우리가 가장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밥 먹기를 시작하듯 독수리들도 우두머리가 먼저 먹어야 먹기 시작한다…….

 

렇게 하늘을 맴돌던 독수리가 과연 얼마가 지나자 한꺼번에 내려앉았습니다. 펼치면 2m가 넘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앉는 장관, 몸이 무거워 단번에 멈춰서지 못해서 날개로 바닥을 한두 차례 두드리는 모습. 황조롱이나 매는 그 앉은 자세의 날카로움으로 사람 눈길을 끌지만, 독수리는 어지간한 아이 정도 크기는 되는 그런 덩치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먹이가 눈 앞에 있는데도 바로 물어뜯지 않습니다.

 

그러나 녀석들은 내려서도 곧바로 먹이를 뜯지는 않았습니다. 떼로 뒤섞여 통통거리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대략 5분이 지나자 먹이랑 가장 가까이 있던 한 녀석이 고기를 덥석 뜯었습니다.

 

그러자 독수리들의 회식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한꺼번에 다 먹지는 않았습니다. 둘레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독수리 아빠가 풀어놓은 먹이가 있는 데로 옮겨가 뜯어먹지 않고, 거기서 먹이를 부리로 콕 집어 무리 속으로 가져 와서 먹었습니다.

 

먹이를 물고 서로 뜯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 살펴보면, 먹는 녀석보다 먹지 않는 녀석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래 독수리 떼를 눈여겨보니, 먹이랑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덩치가 커다란 녀석들이 앉아 있고, 먹이랑 거리가 먼 데일수록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떼 지은 자리가 끝나는 가장자리에는, 겨우 까마귀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녀석들이 머리를 주억대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들이 많이 내려앉아 다시 뜨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김덕성 선생님은 아이들을 내리게 한 다음 좀더 가까운 데로 다가가 살펴보게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지요. 자기만한 독수리를 아주 가까운 데서 그것도 무더기로 보게 됐으니 말이지요.

 

 

 

 

선생님 요청으로 한국조류보호협회 고성지회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부 독수리들이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들이 많았습니다.

 

3. 고성은 박물관에서도 새를 전시한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일행은 고성박물관으로 옮겨갔습니다. 조문청동기 탁본 체험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조문(鳥紋), 이렇게 한자로 하니 어렵습니다만, 우리말로 풀면 매우 쉽습니다. 바로 새무늬랍니다.

 

옛날옛적 새는 우리 인간에게 무척 신성한 존재였답니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훨훨 날아다니니 그렇게 여길만도 했겠습니다. 옛적 사람들은 그렇게 날아다니는 새가 하늘(신)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로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신성한 구역을 뜻한 솟대(소도) 들머리에 나무를 새 모양으로 깎아 세우기까지 했던 것이지요.

 

새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찾아보세요. 모두 마흔세 마리랍니다.

여기 새무늬 청동기는 거의 망가지지 않고 완벽하게 남았는데, 요즘 사람 눈으로 봐도 거기 새겨진 무늬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크고 작은 새가 촘촘하게 들어 있는데요, 커다란 새는 다른 무늬랑 뒤섞이게까지 해서 마치 숨은 그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새 무늬 청동기 모형을 갖고 탁본을 했는데요, 박물관 해설해 주시는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고 꼼꼼하게 이끌어주신 덕분에 다들 즐겁게 한 때를 보냈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밥 때가 무척 늦어졌습니다. 12시 40분을 넘겨버렸습니다.

 

서둘러 밥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정든한정식이었는데요, 마흔 사람 넘는 밥상이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먼저 달콤한 고구마 죽이 한 그릇씩 나왔고요, 구수하면서도 짜지 않은 된장찌개도 좋았습니다.

 

문어나 조개 따위와 해물 나물 채소 나물이 어우러지는 틈새로 문어랑 조개도 나왔는데요, 뭍엣고기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 식성을 고려한 돼지목살도 그럴 듯했습니다.

 

4. 민물저수지 마동호로 바뀐 당항만 안쪽 일대

 

그러고는 당항만 안쪽 끄트머리 간사지교가 있는 데로 달려갔습니다. 여기 일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바닷가 이쪽저쪽을 가로막아 민물 저수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름도 마동호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마주보이는 건너편 산자락에서 맞은편으로 직선을 그어 둑을 쌓고 막은 것입니다. 밀물 때는 거기 수문을 막아 짠물이 들지 못하게 하고, 썰물 때는 수문을 열어 안쪽 짠물을 빼내고 있다고 합니다.

 

김덕성 선생님은 여기서 예전에는 500원짜리 동전만한 재첩이 났다고, 짠물과 민물이 뒤섞여 생산성이 아주 높은 습지였다고, 그래서 갖은 철새들이 모여들고 조개들과 물고기들이 넘쳐났다고 담담하게 일러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는데, 그래도 아직 여기를 찾는 철새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여기 있는 갈대를 위해 궁리합니다. 경남 바닷가에서, 여기처럼 장하게 갈대밭이 남아 있는 데는 없다고 일러주십니다.

 

그 갈대는 갖은 작은 새들을 품어주는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갈대밭에 들어가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세차게 불어대는 겨울철 칼바람도 갈대를 만나면 잦아들기 때문입니다. 키가 큰 갈대는 메말랐지만 따뜻하답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물 위에는 새들이 점점이 떠 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 점들이 새인 줄을 몰랐습니다. 아마도 앞서 본 독수리들의 커다란 덩치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겠지요. 그러나 그 점들이 푸드득 날아오르자 이내 알아봅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5. 층층을 이룬 맞은편 벼랑에도 눈길을 주고

 

선생님은 바다와 철새만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마동호를 왼쪽으로 끼고 걷는 오른편으로 층층을 이룬 사암이 만든 벼랑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사암은 돌이 물러서 잘 부서집니다. 그리고 돌로 굳기 전에 새겨진 무늬들을 잘 간직합니다. 바다가 물결치면서 남긴 무늬가 화석으로 남았습니다.

 

 

 

벼랑 바위를 만져보게도 하고 그런 잔잔한 화석들을 쓰다듬어 보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갈대도 하나씩 꺾어들고 놀게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과 놀고 갈대랑 만나면 갈대랑 놉니다. 그러다가 물가에 서면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를 뜨며 놉니다.

 

여기 사암 납작한 돌은 사람살이에도 그대로 쓰였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손쉽게 떨어지는 이 녀석들을 활용해 담장을 쌓고 우물을 지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바뀐 데가 대부분이지만 아직 그대로 남은 것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두호마을까지 이어지는 바닷가와 들판길 2km정도를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연으로 나오면 그저 얼굴이 밝아집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온 아이들을 잠자코 기다리는 것은 두호마을숲입니다. 나이가 100살 넘었습니다.

 

조선 말기 임금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전국 서원 대부분을 없앴을 때 여기 있던 서원도 없어졌는데, 바로 그 때 마을 사람들이 서원을 대신해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만들면서 숲을 조성했다는 것입니다. 3시 10분, 겨울 철새를 보러 고성을 찾은 아이들 나들이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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