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시내버스로 누리는 의령천 제방길 눈맛

김훤주 2011. 9. 1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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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에 가시는 걸음이 있거들랑 가례면 운암리 평촌마을 은광학교 있는 데서 들판을 가로질러 의령천 제방에 올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의령읍 중동리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을 모시는 충익사까지 3.5km가량 이어지는 멋진 길이 숨어 있답니다.

8월 22일 오전 8시 50분 의령읍 서동리 의령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갑을 마을이 종점인 농어촌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바로 앞 가례면 가례리 의령여중·고 앞을 지나 평촌 마을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굴산 자락 갑을마을로 들어갑니다.

산책로를 통째로 누리려면 평촌 마을을 거쳐가는 합천행 시외버스를 타야 하지만, 이날 버스 출발 시각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답니다.

의령여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자굴산에서 의령천으로 흘러드는 가례천을 따라 샛길을 걸었습니다. 의령천 제방에는 우레탄 자전거길과 걷는 흙길이 나란히 나 있습니다.

양쪽으로 아직은 나이어린 잣나무가 5~6m 높이로 죽 늘어서 있습니다. 이것들 나중에 자라면 나름 장관이겠구나 싶었습니다. 해인사나 통도사 따위 오래 된 절간 들머리 그런 잣나무에는 못 미치지만, 어지간한 군청이나 시청 같은 관공서의 나무들과는 얼마 안 가 바로 어깨를 겨룰 정도는 되겠다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집니다. 한 중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다음에는 청년이 반바지 차림으로 달려왔습니다. 또 얼마 안 있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여인네가 두 팔을 흔들며 바삐 걸어왔습니다.


길가에 마련돼 있는 긴의자에는 어르신 두 분이 마주 앉아 한가롭게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옆에는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타고 왔음직한 자전거가 있는 듯 없는 듯 놓여 있습니다.


물론, 다시 없는 절경이랄 수는 없지만 의령천도 풍경이 그럴 듯했습니다. 바위들이 씩씩하고 날렵한 화강암이 아니고 짙푸른 퇴적암 재질이라 장한 맛은 덜했지만 그래도 물결과 어울려 눈맛이 즐거웠습니다.


건너편 산자락도 나쁘지 않습니다. 줄기 붉은색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곳곳에서 매끈한 몸매를 보여주고, 잘 자란 은사시나무는 푸른 잎을 매단 채 굵지 않은 하얀 줄기를 도드라지게 내놓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의령천에 물고기가 많은 모양인지 왜가리와 크고 작은 백로들이 곳곳에 날아든답니다. 소나무 같은 둘레 가지에 올라앉아 물끄러미 내려다보거나 얕은 물에 들어가 서기도 합니다.

실은 물고기를 노리는 것이겠지만 저리 가만 있는 품이 무슨 스님들 참선하는 모양을 닮았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때로 날아오르는데, 이 또한 예스럽고 느긋해 보인답니다.

한 1km 걸었다 싶은데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쪽 언덕배기에 괜찮은 기와집이 한 채 있습니다. 퇴계 이황(1501~1570)을 모시는 덕곡서원이라 합니다. 퇴계는 경북 안동 출신인데 경남 땅 의령에 그이를 모시는 서원이 있다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판을 읽으니 여기가 그이의 처가였습니다.


퇴계 스물한 살 때 김해가 본관인 진사 허찬의 동갑내기 딸한테 장가를 들었는데 그 허씨 집안 본거지가 가례면이었던 모양입니다. 퇴계는 이 허씨 부인과는 일곱 해를 같이 살고 사별했다고 합니다.

알려지기로 퇴계는 장가 들고 나서 의령을 일곱 차례 찾아 가례면 일대에서 낚시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덕곡서원은 퇴계 사후 1654년 당시 의령현감인 윤순거가 세웠습니다.

서원은 밖에서 쳐다봐도 멋지지만 안에 들어가 서니 더없이 좋았습니다.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 언덕 비탈에 자리잡은 서원 몸채를 쳐다보니 건물 전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위로 올라 서원 몸채 앞에서 내려다보니 앞이 툭 트여 풍경이 좋고 기운은 시원합니다. 앞서 가례천을 받아안은 의령천이 다시 남천을 품는 합류 지점이라 이런가 보다 여겨졌습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지붕 기와를 마감한 막새들 무늬가 여러 가지인 점도 흥미롭습니다.


구름다리를 지나 건너편 산자락으로 다가갔습니다. 길을 알리는 표지판 바로 옆에 곧바로 나오는 산길을 골랐습니다. 남산(해발 321m) 꼭대기로 이어지는 중간 즈음에, 절은 그다지 좋다 하기 어렵지만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그럴 듯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랬습니다. 키가 족히 20m는 될 것 같고 둘레는 네댓 아름이 돼 보였습니다. 가을철 잎 질 때 보면 장관이겠습니다. 내려갈 때는 올라온 길을 버리고 콘크리트길을 잡았습니다. 소나무 참나무가 양쪽으로 우거져 어두컴컴할 정도였습지요. 오를 때 솟은 땀이 내려가면서 다 말라 버렸습니다.


끄트머리 충익사에도 누리는 보람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잘 가꾼 뜨락에 나무들이 엄청났습니다. 둥치 굵은 배롱나무는 둥그렇게 크게 사방으로 퍼져 한창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곳곳에서 꽃들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모감주나무나 가문비나무 따위 다른 나무들도 좋았지만요, 어지간히 오래 묵은 감나무보다 더 큰 뽕나무 한 그루가 인상깊었습니다. 연세가 500이 넘으셨다는데, 여태 꺾이지 않고 오면서 겪었을 풍상도 잠깐 머리에 떠올려 봤습니다.

뽕나무. 뒤쪽 건물이 무색해집니다.


대단한 모과나무도 있는데 이 또한 연세가 280이 넘었다 합니다. 이런 나무들 앞에서도 사람은 고개를 수그릴 줄 모릅니다. 기껏 80~90밖에 못 살고, 그나마 예순이 넘으면 골골골 거리며 사는 존재인데도, 이리 오랫동안 씩씩한 존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령여중 앞에서 충익사까지 2km정도 걷고 나니 시각이 10시 30분을 넘고 있었습니다. 의령에는 명물로 이름난 먹을거리가 망개떡이랑 소고기국밥이랑 소바가 있습지요.

충익사 앞 의병교를 건너 읍내에 들어가 어느 것을 골라먹느냐는 저마다 취향과 깜냥을 따르면 그만이겠지요. 그밖에 다른 음식도 물론 괜찮고요.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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