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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영 이야기(10)식당에 곱배기가 없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1. 7. 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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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가 2010년 5월이었다. 허리 수술을 받은 후 병원에 누워 지나온 삶을 곰곰히 반추해봤다. 거기에 송미영 자신의 삶은 없었다.

그동안 남동생 둘은 물론 남편과 아버지까지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막내 애영 씨는 물론 딸이었다. 미영 씨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기 위해 자신에게 걸어온 일종의 최면이었다. 치매에 걸려 미영 씨 집에 온 할머니와 오랜 병수발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1년 여 짧은 기간이었지만 경북 구미에서 모셨던 시아버지까지….

이제 자신의 삶을 찾고 싶었다. 퇴원을 하자마자 창원소상공인지원센터를 찾았다. 거기서 창업교육을 받으면서 호호국수를 구상했다.

우선 곱배기 메뉴를 따로 두지 않고 누구든 먹고싶은 만큼 배불리 먹이고 싶었다. 적어도 내 집에 온 손님은 국수든 밥이든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음식재료는 100% 국산만 쓴다. 김치도 직접 담근다. 국수의 육수는 100% 멸치를 우려내 쓴다. 합성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는다. 단돈 500원이라도 다른 집보다 싸게 판다.

호호국수 송미영 씨가 육수를 내는데 쓰일 멸치를 가리고 있다. 호호국수는 다른 조미료 없이 100% 멸치육수만 쓰기 때문에 멸치가 많이 든다. 오른쪽은 동생 애영 씨의 아들.

"내 인건비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좀 부지런히 움직이면 가격은 낮출 수 있어요. 알다시피 사골을 24시간 끓이는 가마솥은 연탄을 쓰죠. 가스를 쓰면 감당이 안 돼요."


야채는 팔용동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직접 구입하고, 돼지고기는 김해 주촌면 도살장에 직접 가서 사온다. 간장,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설탕 등 천연재료 말고는 아예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재료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해요.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워낙 예민해서 조미료로 낸 맛은 금방 질리게 되죠. 사골 국물을 내도 정직하게 들어간 재료만큼만 50그릇이면 50그릇만 뽑지, 거기에 물을 타거나 하지 않아요."

그게 호호국수를 창업한 미영 씨의 철학이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지원센터서 창업자금 4000만 원을 빌렸다. 거기에 보태 총 6000만 원 이상이 호호국수에 들어갔다. 앞서 중국집은 아버지와 형제들 소유였지만, 호호국수는 온전히 미영 씨 이름으로 창업한 첫 가게다.

그렇게 하여 세팅된 메뉴가 김밥 1000원, 물국수 3500원, 비빔국수 3500원, 콩국수 4000원, 돼지국밥 5000원, 순대국밥 5000원, 수육백반 8000원, 수육(중) 1만 5000원, 수육(대) 2만 원, 모듬수육(순대+수육) 3만 원이다. 메뉴판 아래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곱빼기를 드실 분께서는 주문시 말씀해주세요. (쓰리곱빼기도요.) ***추가요금은 없어요***."

막내동생 애영 씨가 홀에서 서빙을 하고, 미영 씨는 주방에서 요리를 맡았다. 창원시 성산구 내동 내동상가 뒤편 동우상가 1층인데, 도로와 맞닿은 식당이 아니라 상가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식당 위치로는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인지 3개월 전 개업 당시에는 하루 매출액이 5만 원 내외였다. 하지만 언젠가 미영 씨의 '진심'을 알아주는 손님들이 생길 거라 믿었다.


과연 한 사람, 두 사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먹어본 사람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찾았고, 음식 맛과 주인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한 사람들이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단골도 점점 늘어갔다. 심지어 점심 때 국수를 먹고 간 손님이 저녁에 국밥이나 수육을 먹으러 다시 찾는 경우도 있다. 하루 평균 매출도 30만 원이 넘어가고 있다. 회식 손님이 있을 땐 50만 원이 넘는 날도 생겼다. 신문에 나온 뒤에는 점심 때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종업원도 한 명 더 채용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착한 가격에다 무한 리필 철학 때문에 남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미영 씨는 돈을 좀 많이 벌어야 한다. 가족의 기본적인 생활비와 대출금 상환 외에도 써야 할 돈이 많기 때문이다.

미영 씨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외곽의 한 고아원에 매달 20만 원씩 우윳값을 보내고 있다. 아는 선교사 한 분이 운영하는 고아원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1학년 딸도 마닐라의 국제고등학교에 보냈다.

"작은 딸 아이가 중 3때였어요. 하루는 딸이 '엄마, 나 외국 가서 살고 싶은데 밀어줄 수 있겠나'하고 묻데요? 우리 딸이 좀 조숙하거든요. 없는 살림에 고민을 하긴 했지만, 내가 어릴 때 하고 싶은 것 하나도 못해보고 살았던 경험 때문에 결심해버렸어요. 그래 우리 딸, 너만이라도 훨훨 날아라. 엄마가 못해본 것들 니가 다 해봐라. 땡빚을 내서라도 엄마가 밀어줄께."

필리핀의 국제고등학교는 미영 씨가 후원하는 고아원 선교사를 통해 알게 됐다. 올해는 학교 기숙사에 있지만, 내년부턴 고아원에서 함께 생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월 100만 원 정도면 학비와 생활비가 해결된다.

경북 구미에 있는 시아버지께도 매월 30만 원씩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필리핀 고아원에 보내는 돈도 이번 달부터 30만 원으로 올렸다.

"비행기 삯이 아까워 저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40명 정도의 고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아버지가 교회에서 봉사활동하러 갔다가 알게 된 게 인연이 되어 후원을 하게 됐죠. 이번에 움막을 새로 짓는다고 해서 10만 원씩 더 보내기로 했어요."

좀 더 여력이 생기면 지역의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는 게 꿈이다. 물론 아직은 꿈이긴 하지만 호호국수가 커지면 1층은 식당, 2층은 미용실, 3층은 어려운 장애인들과 함께 일도 하고 월급도 주고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순자 선생은 "아직도 못벗어났어. 이젠 너를 위해 살아야 해. 그런 사회복지사업은 나라에서 해야할 일이야"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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