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80년대 노래판 '니나노'가 부활했다

기록하는 사람 2010. 11. 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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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만 강이냐! 낙동강도 강이다! 낙도~옹강~ 강 바람이 치맛폭을 스치니~, 군인 간 오라버어어니~"

위 추임새와 노래 가사를 보니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맞습니다. 바로 젓가락 장단에 니나노판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추임새와 노래입니다. 그 다음엔 "낙동강만 강이냐, 소양강도 강이다. 해에~저어문 소오양강에~"가 나오기 일쑤죠.

제가 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노래방이라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90년 신문기자가 되고 92년 직장을 옮겨 마산에 왔을 때엔 이른바 '가라오케'라는 게 성업 중이었죠. 그러니까 제 기억으론 90년대 이후에야 노래방이라는 게 대중화했고, 적어도 80년대까지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하면 주로 젓가락 장단에 맞춰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놀았습니다. 한 때 야외전축이나 카세트녹음기를 들고 야외에 나가서 그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는 게 유행하기도 했죠. 하지만 밤에는 대개 젓가락 장단에 니나노판으로 놀았습니다. 물론 여름밤에는 저수지 둑길 같은 데서 친구들과 합창으로 온갖 유행가를 부르며 춤추고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한사 정덕수 시인이 자신의 시 '한계령에서'를 낭송하고 있다. @구르다 이종은 사진


그러나 노래방이 일상화하면서 그런 풍경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노래방 기계 모니터에 나오는 가사와 반주가 없으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80년대 니나노판이 얼마 전 경남 블로거 팸투어 현장에서 되살아났습니다. 5일 저녁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모닥불 정담에 이어 블로거들끼리의 술자리 간담회까지 마친 후, 숙소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모두들 적당히 술에 취했고, 흥도 올랐는데 그냥 잠자리에 들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택시를 대절해 시내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순간 좀 난감해지더군요. 저도 블로거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아무래도 주최측 입장을 벗어날 순 없는 처지였습니다. 일부 인원이 야밤에 숙소를 벗어난다는 게 좀 꺼림칙했던 거죠. 순간 80년대를 풍미했던 니나노 술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모인 블로거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70·80이어서 먹히겠다 싶었던 거죠.

빨간 잠바 입은 정운현 님부터 오른쪽으로 홍미애, 정덕수, 김천령, 임현철, 주먹이 운다, 파비, 푸우, 김주완, 임마 님. @구르다 이종은 사진


나무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더군요. 70·80년대의 웬만한 유행가는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피리부는 사나이는 물론 타는 목마름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 농민가까지 당시의 민중가요까지 새벽녁까지 불렀던 것 같습니다. 양희은의 '한계령에서'라는 노랫말을 쓴 한사 정덕수 시인은 자신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노는데 너무 심취하여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더군요. 그래서 지난번 포스트에서 그 아쉬움을 비췄더니 구르다 님이 사진을 보내오셨네요. 그래서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올려둡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니나노 술판'을 부활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정말 노래방보다 훨씬 재미있고 단합 분위기에도 더없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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