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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오동동 아케이드를 아시나요?

기록하는 사람 2010. 10.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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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원히 사라지는 70·80 청춘남녀 해방구

70·80년대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함섬의 노동자 수가 5만여 명에 달할 때, 이들의 소비문화를 흡수한 곳이 있었다. 바로 마산 오동동이었고, 그 중심에 오동동 아케이드(자유시장)가 있었다.


1967년 한일합섬이 마산에 둥지를 틀었고, 1970년 수출자유지역(현 자유무역지역)이 들어서자 갑자기 불어난 이곳 노동자들의 소비를 감당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1970년 회원천을 덮어 그 위에 세운 건물이 바로 오동동 아케이드다.

공식적인 시장이름은 마산자유시장이지만, 마산사람들은 모두들 오동동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당시만 해도 꽤 현대식 시장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기존의 재래시장과 구분하여 현대식 이름으로 느껴지는 아케이드로 불리웠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동욱 기자가 찍은 사진.


어쨌든 오동동 아케이드에 대한 설명은 얼마 전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 아래의 두 기사에 잘 나와 있다.

37년만에 사라지는 '오동동 아케이드'(이승환 기자)
정동재 마산자유시장번영회장이 전하는 40년사(이동욱 기자)

당시 어린 소년 소녀들에 불과했던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노동자들도 지금은 모두들 40·50대, 많게는 60대 중장년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 중 오동동 아케이드에 대한 추억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이 아케이드에 대한 철거작업이 곧 시작된다. 현재 석면 처리대책 등 철거준비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철거 후 덮여 있는 하천을 복원하기 위해서다.

연인원 수십만 명 이상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오동동 아케이드를 사진으로나마 담아둘 필요를 느껴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때가 지난 6월 12일이었다. 함께 갔던 이는 건축가 신삼호 씨와 재야사학자 박영주 씨였다.

그 때 찍은 사진과 영상 인터뷰를 몇 차례에 걸쳐 여기 남겨두려 한다. 오늘은 첫 번째로 앞뒤 외관과 내부의 점포들 모습이다.


입구에서 본 아케이드 모습이다. 아직 입구 쪽 가게는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케이드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처럼 셔터가 내려진 곳이 대부분이다. 안쪽에서 그 때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5~6개 정도에 불과했다.


이발소 모습이다. 요즘은 이런 이발소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철거되기 전 마지막 조발 요금은 1만 원이었다. 면도는 8000원, 삼고머리는 7000원, 삭발도 7000원, 중고생 조발은 6000원, 소아 조발 5000원 등이다. 염색도 8000원이면 된다. 이용사의 면허증 발급시기를 보니 1970년이었다.


이 그릇집도 아직 영업 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2층은 성인용품 점과 사무실이 많다. 롤러스케이트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업종별 단체들이 아직도 이 건물 안에 있었다.

옥상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한 상인의 도움으로 열쇠를 따고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과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이어지는 곳에 번영회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창밖에서 보니 지난 1월 21일 마지막 정기총회를 했던 모양이다.


옥상을 둘러보고 있던 중 누가 불렀다. 내려다 보니 박영주 신삼호 두 분이다.


옥상에서 내려와 이른바 '나래비 술집 골목'이라고 부르는 골목과 아케이드를 함께 찍어봤다.


이건 A동을 뒷편에서 본 모습이다.


이건 역시 A동을 앞에서 본 모습이다. 이 사진들을 보고 '70·80년대 마산 청춘남여의 해방구'에 얽힌 추억을 되새겨 볼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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