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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멀쩡한 볏논 갈아엎은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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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아침 9시 현대산업개발이 직원 20명남짓이랑 경찰 15명가량 데리고 쳐들어왔어. 그러고는 모가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논을 마구잡이로 뒤집어버리데."

"70 평생 살아오면서 이게 전 재산인데, 여기 이 논 2800평이랑 저기 집이랑 밭 300평이 전분데. 집과 밭은 보상 받았지만 새로 옮겨갈 집 장만은 어림도 없고, 논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저리 망가졌으니……."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낙동강 16공구. 보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하고 시공은 현대산업개발이 한다.

김종구(74)씨의 집과 논은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대원동 236번지 낙동강 둘밖(=둑 바깥) 둔치에 있다.
김씨의 논 2800평은 모두 다섯 배미다.

네 배미는 현대산업개발이 성토 중이고 한 배미는 현대가 그냥 굴착기로 망쳐놓기만 했다. "두 달만 참으면 나락이 여무는데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잘 익은 알곡이 눈에 어른거리는 김씨의 넋두리다.

현대산업개발이 망쳐놓은 김종구씨의 볏논.


김씨는 토지주택공사나 현대산업개발이랑 어떤 얘기도 주고받지 못했다. 굴착기를 동원하기 하루 전에, 일방 통보만 받았을 뿐이다. 수용된 땅에는, 성토·조경 작업을 거친 다음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생긴다.


여기 둔치 땅은 '하천 부지'로 분류된다. 하천 부지는 사유(私有)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 대한민국 국유지 아니면 밀양시 시유지다. 김씨는 국유지와 시유지를 대부받아 농사를 짓고 살림을 하고 있다.


300평 크기 집과 밭은 모두 국유지라 했다. 2013년까지 대부 계약이 돼 있지만 올해 보상이 나와 5500만원정도 받았다. 그러나 새 집을 마련하기에는 태부족이다.


"둘안(=둑 안)에 땅을 사서 집 짓는 공사를 했지. 공사비가 모자라 짓다 말고 그대로 뒀어요. 보상비가 나와야지 문이라도 달고 살지, 지금은 엄두도 못내."


김씨는 재정경제부의 국유지 영농용 토지 대부계약서를 꺼냈다. 굴착기에 유린당한, 집 앞 논을 보며 "네 배미가 시유지, 한 배미가 국유지"라 했다.

영농용 대부계약서 앞면.

영농용 대부계약서 뒷면.


망가진 볏논 너머로 굴착기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집·밭·논 합해 한 해 임대료가 40만원가량이었다 했다. 올해 말까지는 농사를 지어도 되도록 돼 있었다.
"나머지 시유지 네 배미 계약은 어떤지" 물었더니 "2004년부터 밀양시가 농사를 짓도록은 하면서도 대부 계약은 안해줬다"고 했다.

"당시 이상조 시장이 둔치 농지로 빌려준 땅을 수용해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보상을 안해줬다가 법원 판결이 농민을 편들었다 그래. 그때부터 보상을 안 주려고 아예 계약을 안 한 거지."


국유지는 대부 계약을 했는데도 보상을 못 받았고, 시유지는 시와 임대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농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92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김씨의 지난날이 통째로 부정됐다.

물론, 현장에서 만난 현대산업개발 공사부장은 '국유지는 보상이 나올 것'이라 했다.


토지주택공사는, 시유지의 경우 땅에 대한 보상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벼 같은 작물도 지난해 '경작 금지'를 했기 때문에 '불법'이라 보상 대상이 아니라 했다. 다만 철골 구조물 같은 철거해야 하는 이른바 '지상 지장물'에 대한 보상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논을 갈아엎은 굴착기 바퀴 자국 위로 노루나 고라니 같은 짐승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김씨의 눈에는 이또한 미심쩍다.

"나 말고는 열다섯 집이 싹 다 딸기 하우스를 했어. 너비 8m 길이 100m짜리 딸기 하우스 한 채에 550만원 보상금이 나왔다는데, 실제 비용은 많아야 250만원이거든. 그렇다면 나머지 300만원은 영농을 못하는 데 따른 보상금으로 봐야지."

망가진 자기 논을 바라보는 김종구씨.


형평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딸기 농사는 짓는 사람이 많다고 집단을 형성해 대항할까봐 은근히 보상을 해주고, 벼농사는 짓는 사람이 혼자뿐이라서 토지주택공사 등에서 싹 무시했다고 김씨는 생각한다.


김씨는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농사짓는 자기자신의 의견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못했다고 했다. 국가·공사·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강행했다면서, 자기 말을 제대로 들어주기만 해도 좋겠다고 했다.


김종구씨. 어디 하소연할 데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4대강 사업 결정은 대통령이 했다. 지난해 나온 정부의 '경작 금지' 조치 역시 경작권을 가진 김씨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토지주택공사의 감정과 보상도 자기에 기준에 따른 것일 따름이고 협의는 말뿐이었다. 2004년 밀양시유지인 둔치 농토 대부 계약 또한, 단체장의 결심만으로 못하게 됐다.

지금은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조차 없다. 어디를 찾아가든 듣는 말은 죄다 '다른 데나 위에 가 보시라'는 것뿐이다.

게다가, '지장물 보상'의 경우, 김씨는 또 할 말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얘기에 신경써 주지 않는다. 김씨 또한 2003년까지는 같은 땅에서 딸기 농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 태풍 매미를 겪은 밀양시가, 하우스는 폐기물이 많이 생겨 태풍·장마가 왔을 때 물 흐름을 방해해 피해를 키운다는 이유로, 영농 전환을 권했다.

김씨는 그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 못내 아쉽다. 만약 그 때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딸기 농사를 지었다면 이번에 '지장물 보상금'을 쏠쏠하게 챙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집 앞 논이 굴착기 삽날 아래 사라지면 김씨에게는 남는 게 없다. 둘 안에 있는 논 1만 평 빌려 짓는 농사뿐이다. 그것도 지난해는 1만5000평이었는데 올해 줄었다.

둘밖 딸기 농가들이 둘안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논밭 임대료가 올라버렸는데, 김씨로서는 그것을 맞추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8월 2일치에 실은 기사를 고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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