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다시 가 본 소매물도

김훤주 2008. 2. 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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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다녀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세 번째입니다. 2001년 4월 취재하느라 한 번 다녀왔고 두 번째는 2003년인가에 아들이랑 딸이랑 함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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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사진은 등대섬에서 바라보고 찍은 소매물도 끝자락 공룡바위고 아래쪽 사진은 소매물도 끝자락에서 찍은 등대섬입니다.

지난해 5월 아이들 어머니가 쓰러지고 나서 아들 현석이랑 딸 현지는 제대로 된 나들이를 한 차례도 못했습니다. 전에는 없는 살림이나마, 집에서 싼 김밥을 자동차 안에서 맹물이랑 꾸역꾸역 먹을지라도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올해 아들 현석이 고3이 되니까, 이번 아니고는 앞으로 함께 이렇게 돌아다닐 일도 없겠구나 싶어 평일 없는 시간을 억지로 쪼개어 2008년 1월 29일 다녀왔습니다. 덕분에, 돈 좀 깨졌습니다.

새벽 5시, 경남 창원을 떠나 경남 통영을 향했습니다.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고속도로에 올렸는데 통행료가 4900원이었습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 닿으니 6시 40분, 빈속이라 맞은편 밥집에 들러 충무김밥을 셋 샀습니다. 1만500원을 줬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더디 식으라고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따뜻한 국물이랑 함께 넣어줬습니다.

터미널에서는 오고가는 배표를 한꺼번에 팔았습니다. 가는 데 1만3200원 오는 데 1만3200원, 현지랑 현석은 중고생이니까 10% 깎아서 1만2000원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합해 배삯만 7만4400원이 들었습니다.

배는 아침 7시에 통영항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숭숭 새어들어오는 선실에 쪼그리고 앉아 모자라는 잠을 벌충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주 추워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조금 나았습니다. 8시 20분, 소매물도에 내렸습니다.

올 때 터미널에서, 돌아가는 배가 12시 20분과 오후 3시 20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통영터미널에서 각각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뜨는 배편입니다. 그러니까 당일 돌아가야지 작정한 우리에게는, 4시간 또는 7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어느 배를 골라잡아도 무방하답니다.-통영발(發 )오전 11시 배편은 주말 또는 공휴일에만 다닌다 했는데 이 때는 방학이라 그런지 평일에도 다녔습니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소매물도를 세로질러 등대섬 쪽으로 갔습니다.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이어주는 길은, 때로 물에 잠기고 때로 물에 잠기지 않기 때문에, 그것부터 확인해야지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널 수만 있다면, 후다닥 등대섬부터 한 바퀴 둘러보고 다른 데를 봐야지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길에 지금은 문을 닫은 매물초등학교 소매물도분교 앞에서 김밥 먹을 때만 쉬었을 뿐 사진도 한 번 안 찍고 내쳐 걷기만 했습니다.(그래 봤자 30분 안팎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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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에서 남쪽으로 바라보고 찍은 바다입니다.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좀 세게 불었습니다. 오가는 배들은 고기잡이입니다. 바다에 비친 햇살이 은근히 은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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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바다입니다. 해가 구름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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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길입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이어주는. 옛날에 왔을 때는 바닷풀 때문에 아주 미끄러웠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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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길을 지나기 전에 소매물도의 북쪽을 바라보고 우리 딸 현지가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오른편으로 쭉 나가면 우리가 내린 선착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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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현지 작품입니다. 현지는 자기가 지나가는 발 아래에 물결이 세게 치니까 신기하게 느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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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건너고 나서, 그러니까 등대섬에서 바라본 몽돌길입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바위가 이른바 공룡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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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917년 8월 5일 처음 빛을 뿜었습니다. 높이가 16m가 되는데, 빛이 뻗어나가는 거리는 48km에 이른답니다. 아래 사진은 공룡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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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바람이 아주 거셌습니다. 눈물이 막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워 소리쳤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니 가슴까지 시원해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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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오른쪽에 바위가 조그맣게 보이고 멀리 왼쪽에서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는 배도 한 척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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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공룡바위를 한 번 찍었습니다. 아마 현지 솜씨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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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맞은 편 소매물도에, 왼쪽 높다란 곳 소나무가 적은 데에,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밭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부쳐먹었는데 지금은 묵정밭이 돼 있습니다. 이런 데서 밭을 일궈먹고 살았을 그이들 사정을 한 번 짐작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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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낭떠러지를 찍어봤습니다. 오금이 저렸습니다. 아래 푸른 물이 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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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바위입니다. 고사한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그냥도 찍고 당겨서도 찍었습니다. 당겨 찍은 사진에는 멀리 떠 있는 바위섬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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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찍고 싶었나 봅니다. 잘 찍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다의 푸름과 드넓음을 견줘볼 데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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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낭떠러지입니다.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깎아지른 정도와 높이가 그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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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다가오는 바위섬. 당겨 찍어서 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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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현지가 산토끼를 발견했습니다. 이 친구는 나무 계단에 머리만 박고 있었습니다. 현지는 사진을 찍고 저는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2005년에도 산토끼를 잡았다가 놓아준 적이 있거든요. 산토끼는 이내 계단 아래 빈 틈 사이로 잽싸게 내뺐습니다. 우리 딸 현지는, 산토끼치고는 많이 통통한 것 같다고, 아주 즐거워 입에 웃음을 통째로 베어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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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인가 왔을 때는 사진 한가운데 갈라진 저기로 들어가서 고둥이랑 소라 잡으면서 놀았습니다. 지금은 울타리를 쳐놓아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옛적 저기 갔을 때, 소라가 아주 많았던 기억도 있지만, 폐스티로폼 따위 사람들에게 쓰이고 버림받은 어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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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에 소나무가 다들 섬 한가운데를 향해 드러누웠습니다. 생긴대로 죽죽 자라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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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섬에서 소매물도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까 말한대로 소매물도 등허리에는 옛적 사람들이 땅 파먹은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돌로 쌓은 축대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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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과 바람에 씻겨 만들어진 바윗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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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사람들 땅 파먹은 자취가 더욱 잘 드러납니다. 돌 축대 위에 보면 평평하게 골라진 땅이 넙죽 엎드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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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 남쪽 귀퉁이에서 바라보면 이런 등대섬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매물도 산마루 망태봉에 오르기 전에 말씀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물결은 아주 잘 보입니다. 가만 들여보고 있으면 물결이 바위를 때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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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동백입니다. 희게 빛나는 까닭은 사진을 잘못 찍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윤기가 흐르는 동백 잎이 햇빛을 퉁겨냈기 때문에 이리 됐습니다. 야생 동백도 아까 소나무들처럼 바짝 바닥에 엎드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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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풀조차 엎드렸구나, 여기면서 찍은 모양인데, 지금 생각하니 왜 찍었는지 모르겠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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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 매물도 감시서입니다. 79년 마산세관 소속으로 문을 열었다가 80년 장승포세관으로 옮겨가서 87년 폐지됐다고 돼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남쪽과 북쪽 바다가 한 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자그만 고기잡이배를 쓰는 이른바 특공대 밀수를 잡기 위해 세운 건물이랍니다. 안에 보니까 구들을 한 방도 있고 변소도 있고 사무실도 있었습니다. 기록에는 레이더 장치도 돼 있었습니다. 망태봉 올라가는 길에 있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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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백입니다. 동백이라는 표시가 별로 안 나서, 옆에 떨어져 시든 동백 꽃잎을 하나 갖다 놓고 찍을까 하다 그만뒀습니다. 야생 동백 우거지도록 커버린 아래에 이렇게 새끼 동백이 비집고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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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도초등학교 소매물도분교 전경(全景)입니다. 가까이서 그리고 멀리서 한 번씩 찍어봤습니다. 저는 멀리서 찍은 사진이 더 좋습니다. 학교 너머 보이는 데는 대매물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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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4월 29일 문을 열었다가 1996년 3월 1일 문을 닫았군요. 지금은 하얀산장에서 빌려 쓰고 있다는데 아예 출입을 못하게끔 하고 있었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면 용서하지 않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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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이 있는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지만 세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을 여기저기를 얼쩡거렸습니다. 민폐 따위를 끼치지는 않았고, 허물어져가는 사정만 엿봤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잠녀 '할머니'들이 바다에서 나왔을 때 아래 선착장으로 가서 해물을 몇몇 장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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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담장에 붙어 자란 나무입니다. 이름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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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글씨가 지워져 버린 간첩 신고 안내문. 요즘 같으면 이른바 '거수자' 신고 안내쯤 되겠습니다. 거수자가 무엇인지 모르시죠? 거동수상자의 줄임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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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부러지고 그 밑에 '돌미역'이 붙어 있습니다. 아래 '활인!'을 두고 이리저리 짐작을 많이 했는데요, 서실 다니며 나름 한자 공부 많이 한 중2 현지는 <活人>이 아닐까 짐작했고, 한자 공부도 했지만 동생보다는 세상 물정이 좀더 빤한 고3 현석은 "바보야!" 이러면서 <割引>이라 확신했습니다.(나중에 물어보니 현석은 "바보야!"라 한 적이 없다 합니다. 그리고 현석이 <活人>이라 했다 합니다.) 저는 "'깎아준다'는 할인을 이렇게 썼겠지만 우리는 '사람을 살린다'는 활인으로 알아듣자." 하면서 어정쩡하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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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복래' 콘크리트 대문입니다. 집은 거의 다 부서지고 문만 남아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소문(笑門)만 남아 있고, 문을 통해 들어온 만복(萬福)은 뿔뿔이 흩어져 모조리 사라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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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 표지가 붙은 이 집은 아직 성했습니다. 매물도 사유지 대부분을 외지인 한 명이 사들였다는데, 이 사람이 이 섬 주민들더러 당대에는 원래 살던 대로 살게 해 드리겠다고 했다지요 아마. 그 때문에 이리도 심하게 무너지고 부서지는 일이 지금 이 섬에 일어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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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양철은 원래 있던 집들에서 걷어낸 지붕이지 싶습니다. 옛집들 없어지고 나면 소매물도는 완전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사람 사는 자취가 깨끗하게 사라진, 아주 깔끔한 도심지 까페 같은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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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 할머니들이 물에서 나왔습니다. 12시 전후 배 들어올 때였습니다. 가장 오른쪽 분이 먼저 나왔고(11시 전에 나온 분도 계십니다. 이 분은 평상 너머에서 해물을 팔았습니다.) 다음다음 차례로 나와 앉으셨습니다. 나오실 때는 아래위로 온통 까만 고무옷을 입으신 채였는데, 나오셔서는 춥지도 않으신지 이렇게 윗도리 고무옷을 벗고 장사를 하셨습니다.

이날은 우리도 사치를 좀 했습니다. 문어도 3만원 어치 사고 전복도 2만원 어치 샀습니다. 전복은 썰어달래서 고추장 찍어서 현지랑 현석이랑 셋이서 앉은 자리에서 먹었습니다. 제대로 씹지도 않았는데 혓바닥에서 그냥 없어졌습니다. 문어는 크지 않은 4마리였는데, 집에 가져와 한 마리는 이웃 주고 나머지는 양념해서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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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풀들은 뭍엣것보다 두텁고 빛이 나고 끝이 좀더 동글동글합니다. 바로 아래 이것은, 잘은 모르지만 머위 같아 보입니다.(경남 거제 사시는 '얼레지풀'님이 <털머위>라고 일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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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도 윤이 유난히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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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물결 철썩이는 바위 틈에서도 풀들은 자랍니다.  푸른 빛도 잃지 않고 씩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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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입니다. 아주 보드랍습니다. 옛날 같으면 몇 개라도 캤을 텐데, 이제는 그냥 제대로 자라거라,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이 네 삶의 끝이면 많이 서운하지 않겠느냐, 여깁니다. 잎이 크고 두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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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쑥도 있었습니다. 못 다 지고 남은 가을쑥인지 이제 막 피어나는 봄쑥인지는 잎사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가을쑥은 좋아봐야 조금 반짝거릴 뿐입니다. 봄쑥은 이제 막 깨어난 듯 보풀보풀 솜털이 나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짐작만 해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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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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