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뉴미디어

정치인 간담회, 기자와 블로거의 차이는?

기록하는 사람 2010. 3. 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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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까지 신문사에 소속된 '기자'였습니다. 20년 넘게 기자질을 했으니 그동안 참석했던 '기자 간담회'나 '기자회견'은 물론 정치인 또는 관료들과 밥자리, 술자리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소속된 기자가 아닌 '시사 블로거'의 자격으로 정치인과 저녁식사를 겸한 간담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19일(금) 오후 7시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였는데요. 그를 만나보고자 하는 시사블로거들의 요청과 소셜미디어를 알고 싶다는 민주당 원혜영 의원의 바람이 맞아떨어지면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두 번의 부천시장과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3선의 원혜영 의원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한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의 아들이자 풀무원식품의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원혜영 의원.


하지만 원혜영 의원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기자' 간담회와 '블로거' 간담회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보통 '기자회견'이라고 하면 '간담회'보다는 공식적인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회견'이든 '간담회'든 정치인의 필요나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같지만, 기삿거리가 되는 현안이나 쟁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가 '회견'인데 비해 '간담회'는 특별한 주제를 갖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자회견'에는 사진기자들이 오지만, '간담회' 자리에는 따로 사진기자를 부르지 않는 게 관례죠. 특히 사무실이 아닌 식당에서 하는 기자 간담회라면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게 예의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편안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겠죠. (물론 기자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이날 원혜영 의원과 '블로거 간담회' 자리는 전혀 달랐습니다. 일단 간담회 모습이 담긴 사진부터 보시죠.


바로 앞에 비어 있는 연두색 방석이 제가 앉아 있던 곳입니다. 막걸리와 소주, 맥주 등 세 가지 술을 각자 취향대로 마셨습니다. 옷차림도 각양각색입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미디어한글로 님을 빼고는 모두들 편안한 차림입니다.

게다가 도아 님은 아이폰으로 트위터 삼매경에 빠져 있고, 촛불집회 생중계로 유명한 라쿤 님은 저쪽 모서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라쿤 님을 제가 찍었습니다. 그 후 라쿤 님이 자기 자리에 앉아 저를 겨냥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순순히 당할 리 없습니다. 저도 잽싸게 카메라로 응수했죠. 마치 서부의 건맨들처럼 권총 대신 서로 카메라를 겨냥하며 대결을 벌인 셈입니다.


블로거 커서(거다란) 님도 숫제 일어서서 촬영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블로거들이 수시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니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기자들이 모인 간담회 자리에선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보라미랑 님 뒤로 도아 님과 김현익 님도 각자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원혜영 의원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가장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는 보라미랑 님도 드디어 영상 카메라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라쿤 님도 계속 찍어대는군요.

맨 뒤쪽에서 계속 미소만 짓고 있던 몽구 님이 마침내 회심의 카드를 꺼냈습니다. 자신의 아이폰을 원혜영 의원에게 건네주면서 "의원님, 셀카 아시죠? 이걸로 셀카 한 번 부탁드릴께요"라고 한 겁니다.


원 의원이 "이거 셔터가 어떤 거지?" 하면서 어설프게 셀카를 찍어봅니다. 옆에서 "팔을 가장 멀리 뻗으세요"라고 코치를 해줍니다. 이 장면을 몽구 님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고, 커서(거다란) 님은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김현익 님도 아이폰으로 촬영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셀카를 찍고 있는 원혜영 의원과 그걸 찍고 있는 블로거들의 재미있는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기자 간담회와 달리 블로거 간담회 자리는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서로가 서로를 촬영하느라 분주합니다. 블로거들은 기자와 달리 기사 마감시간이 없는 만큼, 이렇게 찍은 사진과 영상은 몇날 며칠을 두고 끊임없이 인터넷에 올라옵니다. 신문기사의 생명이 하루~이틀 정도에 불과하다면, 블로그 포스트의 생명은 그것보다 훨씬 길고 끈질깁니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은 이런 글도 쓰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이런 간담회에서 오고 간 말들 중 몇 개를 간추려 자기 회사에 '정보보고'로 올리는 것으로 그치죠. 가끔 이런 간담회에서 나온 말이 기사화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어쨌든 원혜영 의원 말고도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하는 정치인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겁니다. 그런 자리에서 블로거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렇게 설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블로거들은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요. 하하.

※파워블로거 100명과 함께 하는 100人닷컴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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