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뉴미디어

언론시민단체, 이젠 뉴미디어운동 나서라

기록하는 사람 2009. 10. 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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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창립 10주년을 맞는 (사)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의 10주년 자료집에 실을 예정으로 청탁을 받아 쓴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자료집 발간이 1년이나 연기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이 실리는 것도 미뤄졌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1년 후엔 이 글의 효용성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린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나와 경남민언련은 아마도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 아니 경남민언련이라는 자리에 시민단체라는 말을 넣어도 되겠다. 기자 노릇을 해오면서 적어도 시민단체보다는 더 정의롭고 깨끗해야 한다는 경쟁의식을 은연중에 품고 살아온 것 같다. 특히 경남민언련은 언론을 상대로 한 운동단체였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또한 시민단체와 관계에서 나름대로 이런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웬만하면 회원으로 가입하여 회비 후원이라도 한다. 둘째, 회원이 되더라도 의사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간부직은 맡지 않는다. 세째, 내가 회원인 시민단체라도 문제가 있을 땐 기사를 통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이런 원칙 때문에 한 때 이런 저런 단체 사람들로부터 '회원이 그럴 수 있느냐'는 욕을 듣기도 했다.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행정기관의 예산지원을 받아 해외 시민운동 견학을 떠났는데, 그걸 살짝 꼬집는 기사를 썼다가 당한 일이었다. 그 일 이후 그 단체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퇴하고 말았지만, 어쨌든 지금도 월 5000원 내지 1만 원씩 회비를 내는 시민단체가 10여 개쯤 된다.

그러나 경남민언련에는 애초부터 회원으로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도 내 나름대로의 원칙 때문이었는데, 민언련의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할 현직 기자가 회원이 되는 것은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날 아내가 말했다. 구체적으로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가 민감한 사회현안에 대해 다른 시민단체들이 짐짓 모른 척 하고 있을 때 경남민언련이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것 같다. "이런 일에 시민단체가 나서 싸워야지, 다른 시민단체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지 모르겠어. 민언련이 그나마 제일 낫네? 나 민언련 회원가입 해야할까 봐." 아내는 자기도 시민단체 직원이면서 그렇게 말했고, 실제 민언련에 회원가입을 했다.

아내의 말처럼 경남민언련은 언론 문제뿐 아니라 다른 시민단체들이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이유로, 또는 너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나서지 않는 현안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발언하고 연대하고 투쟁해온 단체였다. 마산에서 벌어진 조두남·이은상 기념관 반대투쟁도 그랬고, 각종 노동탄압과 사학비리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최근에도 마산 수정만 STX 조선기자재 공장 문제라든지, 거창 북상초교 교장공모제를 둘러싼 갈등, 공무원노조 탄압 등에 대해 계속 개입해오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연대활동 필요하지만, 본연 소홀하면 안돼

좋은 일이고,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자 입장에서 볼 때 좀 아쉬운 점도 있다. 이름 그대로 '민주언론'을 위한 운동에 더 전념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연대활동이 워낙 많아서인지 본연의 언론운동에 약간 소홀해진 부분은 없는지도 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권 들어 지역언론이 더 죽을 맛이다. 민언련과 언론노조, 학계가 힘들여 제정했던 지역신문발전지원법도 빨리 개정하지 않으면 내년에 폐지된다. 정부광고도 서울지역일간지, 그 중에서도 조·중·동에 몰아주려고 하고 있다. 언론악법으로 신문사간 복수 소유를 허용함으로써 서울지역 일간지의 지역신문시장 진출이 곧 본격화될 전망이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으로 조·중·동의 종합편성채널 또는 보도채널 진출도 코 앞에 있다.

이런 와중에 그동안 비교적(다른 지역에 비해) 깨끗했던 경남에도 별의별 사이비신문과 사이비기자들이 준동하고 있다. 엊그제도 진주에서 서울에 본사를 둔 '듣보잡 신문사'의 사이비기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지방자치단체의 광고(또는 공고) 배정에 대한 기준도 제멋대로이다 보니 지자체 예산이 사이비신문에 영양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문제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이 문제의 경우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 자격조건을 적용해 그 자격에 미달하는 신문사는 정부나 지자체, 공기업의 광고를 주지 않도록 훈령이나 지침만 만들어도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산적한 지역언론계의 문제에 대해 언론전문 시민단체인 경남민언련이 나서서 언론현업인단체와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며 대안을 만들어 운동으로 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과거 한동안 벌여온 연감 강매 근절운동이라든지, 조중동의 신문 불법경품 신고대행센터 운영도 요즘은 좀 시들해진 느낌이다. 그런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닐진대 시들해진 것은 아무래도 주관 단체의 의지가 약해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뉴미디어 운동에도 앞장서는 경남민언련이길…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들이 1~2년, 길어도 3년 내 해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지역신문은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작 10~20여 명의 현지 주재기자와 영업직원만으로 운영되는 서울일간지의 지역계열사가 지역 신문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경남조선일보', '경남중앙일보'가 현재의 지역신문을 대체할 거란 이야기다.

물론 그런 상황이 되어도 경남민언련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존재이유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남민언련이 진정한 지방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바란다면 지역언론을 지켜내는 일부터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경남민언련이 해왔던 언론개혁운동의 성과도 적지 않다. 관언유착의 고리로 지목되어 왔던 '계도지(주민홍보지)'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폐지시켰던 것도 경남민언련과 경남도민일보의 공조에 의해 가능했던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혁보다도 훨씬 먼저 경남의 자치단체 기자실을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바꿔내고, 시민 누구나 그곳을 기자회견장이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 것도 경남민언련의 공로였다.

그런 경남의 앞선 언론개혁 성과들은 전국적으로 계도지 폐지운동과 기자실 개혁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부처의 기자실 개혁도 경남의 기자실 개혁이 모티브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적어도 경남의 신문 3사(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남일보)만큼은 선거 때 노골적인 편파·왜곡보도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 무분별하고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공짜 해외취재 관행이 물밑으로 자취를 감춘 것 등도 경남민언련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남민언련 블로그. 이젠 시민이 직접 미디어를 갖고 발언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경남민언련이 웹2.0시대 시민미디어('시민기자'를 한 단계 뛰어넘은) 운동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경남민언련도 자체적으로 블로그(http://blog.daum.net/gnccdm)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지금 세계의 미디어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시민도 기자가 될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진보로 여겼지만, 지금은 '모든 시민이 미디어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시민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미디어가 바로 블로그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네트워크다.

시민운동도 이제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시민운동2.0'을 개척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즉 성명서나 논평, 기자회견을 통해 기존 언론에 단체의 주장과 활동이 보도되길 기대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자신의 개인미디어를 소유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경남민언련이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그 효용성와 약발의 한계가 드러난 UCC 동영상 교육이나 시민기자 양성교육 등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앞서가는 시민미디어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경남민언련은 그야말로 '언론'시민단체이다. 그렇다면 언론분야에서 가장 전문성을 갖춰야 할 단체다. 과거의 올드미디어 환경에서는 경남민언련의 전문성은 흠잡을 데가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뉴미디어 환경에서도 경남민언련이 과연 걸맞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자문해봐야 할 때가 바로 창립 10년을 맞는 지금인 것 같다. 향후 20주년이 되는 해에는 경남민언련이 시민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킨 단체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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