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영화 해운대 눈물포인트, 사람마다 달랐다

기록하는 사람 2009. 8. 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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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를 가족과 함께 봤다. 썩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볼만한 영화였다. 특히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트급 '재난영화'라는 점, 여기서 설정된 메가쓰나미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는 점에서 그렇다.(참고 : 과학자가 본 영화 해운대와 쓰나미)

관객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CG 수준을 요구하는 지는 몰라도, 일부러 흠을 잡기위해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 광안대교와 마천루를 덮치는 CG 씬도 손색이 없었다.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스토리도 뭐 그런대로 무난했다. 함께 영화를 봤던 아들녀석은 일본의 재난영화 '일본침몰'보다 훨씬 스토리도 좋았다고 했다.(참고 : 영화 해운대와 일본침몰의 차이는?)

다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듯한 몇몇 장면들이 좀 거슬렸다. 예를 들어 해양구조대원인 형식(이민기 분)이 헬기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 자신을 좋아하던 희미(강예원 분)와 놈팽이 남자(누군지 모르겠다)를 구하는 데 지루할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그랬다. (정말 너무 길었다.)

일부러 흠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면 CG도 괜찮았다.


그 순간 해운대에는 엄청난 파도가 덮쳐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아비규환의 상황에 처해있는데, 구조대 헬기가 먼바다의 요트 승선자 두 명을 구하기 위해 '쌩쇼'를 하고 있는 꼴이라니….

게다가 영화 속에서 대표적인 '나쁜 놈'으로 나오는 그 놈을 구하기 위해 자신(형식)을 지탱하고 있던 헬기와의 연결끈을 칼로 자르고 바다에 빠지면서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드는 꼴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신파'로 보였다.

하지만 뭐, 그것도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는 것이므로 결정적인 흠결이라 말하긴 어렵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와 함께 봤던 아내와 아들녀석에게 "어떤 부분에서 울었냐"고 물어봤다. 우선 아내는 놀랍게도 내가 거슬렸던 바로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형식이가 희미를 구하고, 그 나쁜놈도 구하려다 결국 자신과 그 나쁜놈 중 둘 중 한 명만 구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끈을 자르고 바다에 빠지는 장면, 파도에 휩쓸리면서 헬기 위에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희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드는 장면에서 울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신파' 같았다. 그런데 아내는 이 장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아들녀석은 마지막 장면 백수 오동춘(김인권 분)이 용감한 시민상을 받고 그 상장과 함께 어머니 영정을 옆에 두고 소주를 마시면서 꺼이꺼이 우는 장면에서 자신도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렇게 아들 상장 받는 걸 보고 싶었는데,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상을 받았잖아요."


아마 아들은 그 장면에서 자신과 오동춘을 동일시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이 어머니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는데, 그 순간 어머니가 죽고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에서 눈물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요즘 사실 아들녀석은 성적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또 아내는 여성의 입장에서 한 남성이 자신을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도 사실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장면이 있었다. 이혼한 부부 김휘(박중훈 분)와 이유진(엄정화 분)의 딸 지민(김유정 분)을 미아보호소에서 만난 김휘 박사가 자신이 아빠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딸에게 줄 김밥을 사고, 뒤늦게 나타난 엄마 유진이 전 남편 김휘를 막 욕하는 장면이었다. 그 욕하는 내용 중에 김휘가 지민의 아빠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나오는데, 그 때 다른 남자의 손에 이끌려 미아보호소를 나가고 있던 딸 지민이 뭔가를 알아챈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는 부분에서 내 눈앞이 흐려졌던 것이다.

내 눈이 뜨거워졌던 것은 이 장면이었다. 딸은 아직 이 남자가 아빠인줄을 모른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아내는 "숨겨놓은 딸이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맹세코 그런 일은 없지만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그 후, 우리 회사의 경제부장(그는 여성이다.)에게 들었는데, 김휘와 유진이 딸 지민이를 구조 헬기에 어렵게 태우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렇듯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마다 눈물 포인트가 달랐다. 그건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다른 분들도 제각각 영화 해운대의 눈물 포인트가 달랐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궁금하다.

참,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연기력이 출중했던 배우를 꼽는다면 오동춘 역의 김인권, 설경구의 아들 승연 역의 천보근, 지민 역의 김유정이다. 형식 역의 이민기도 괜찮았다. 솔직히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의 연기는 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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