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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유족회 4

이들 유족에게 이승만은 학살자일뿐이었다

51년 전 피학살자유족회 선언문을 보니...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가 물러나자 그동안 억눌렸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람들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가족들이었다.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기를 틈타 사회불안 요소 제거 차원에서 재판도 없이 산골짜기에서 총살해버리거나 바다에 수장한 사람은 최소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학살자 유족들은 10여 년간 공포정치에 억눌려 피해 사실을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다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자 그제서야 각 지역별로 유족회를 결성하고 진상규명 운동에 나섰다. 4·19 직후 경상도에서 먼저 시작된 진상규명 운동은 그해 10월 20일 서울에서 전국유족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는데, ..

60년대 진보인사들 명예회복 길 열렸다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18일, 마산에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을 하던 노현섭 씨와 교원노조 중등지회장 이봉규 씨, 그리고 영세중립화 통일운동가인 김문갑 씨 등이 집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전격 연행됐다. 그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구금된 이들이 수천 명이었다. 구속영장도 없었고, 처벌할 법률도 없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헌법도 무시하고 뒤늦게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 그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15년, 10년씩 중형을 때렸다. 천만다행으로 풀려나온 사람들도 제각각 수개월씩 불법구금을 당한 뒤였다. 이렇게 5·16쿠데타 직후 억울하게 죽거나 징역을 살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가 21일 '5·16쿠데..

49년전 피학살유족회 결의사항을 보니…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두 번의 강의를 했고, 두 건의 사내 행사(블로그 강좌, 지면평가위 워크숍)를 제가 속한 부서 주관으로 치러냈으며, 금요일(16일)엔 1960년 이후 49년만에 부활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마산지역 합동위령제' 행사를 도왔습니다. 위령제 준비과정에서 제가 맡은 것은 행사 안내 팸플릿과 마산 민간인학살 자료집을 편집, 발간하는 일이었습니다. 팸플릿은 24페이지, 자료집은 145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책(冊)을 만드는 일이라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마산유족회 발행, 김주완 편저, 비매품)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자료집은 '한국전쟁 전후 마산지역 민간인학살에 대한 유족과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사진·영상으로 보는 학살 유해발굴 현장

어제(30일) 또 민간인학살 암매장 터 유해발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도 이런 현장을 많이 봐서 이제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멍멍해집니다.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산으로 좀 올라가면 가늘골(아랫법륜골)이라는 야트막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감나무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과수원의 주인이 산을 매입할 때 전 주인으로부터 학살 매장터가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곳은 감나무를 심지 않고 공터로 두었다고 합니다. 이 감나무 과수원 주인의 제보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경남대박물관 유해발굴팀(책임연구원 이상길 교수)이 발굴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지난 11일 처음 유골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입니다. 장맛비가 와서 이렇게 덮어놓았습니다. 19일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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