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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5

민중의 한 서린 암반동굴 여수 마래터널

지난 3일 전남 여수에 강의를 다녀온 적이 있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하룻밤을 선소(거북선을 제조했다는 곳) 앞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오문수 선생의 안내로 여수의 이곳저곳을 둘러봤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곳이 있어서 소개드릴까 합니다. 여수역에서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마래2터널입니다. 좁은 1차선 터널이어서 터널에 진입하기 전, 마주 나오는 차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합니다. 터널 입구가 그렇게 좁은데다 낡아 보여서 그저 좀 오래된 터널인가 보다 싶었는데, 들어가보니 그냥 보통 터널이 아니었습니다. 암벽이 울퉁불퉁 거친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는 인공 동굴이었습니다. 폭이 좁아 차량 한 대밖에 주행할 수 없지만, 동굴 안 여섯 군데에 여유공간을 만들어 교행이 가능하도록 해두었습니다. ..

가본 곳 2009.07.11

"아버지, 이제야 60년 한을 풀었습니다"

올해 72세 노인의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60년에 걸친 원한을 마침내 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결정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전화통을 붙든 채 울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온 식구가 함께 울었지요."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차용현 씨는 열 두 살 나던 해인 1949년 9월 20일 아버지와 당숙을 한날 한시에 잃었다. 큰아버지도 함께 끌려 갔으나 군인에게 돈을 써서 겨우 살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에게 돈을 주면서 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당숙을 함께 풀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날 큰아버지만 풀려나왔다. 돈을 받은 대위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한 사람만 먼저 풀어줬다"고 했다. 돈이 모자라서 그런가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돈..

이스라엘군 민간인학살, 한국군 학살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한 마을 집에 민간인 110명을 몰아넣은 뒤 포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30여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지난 9일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됐다.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집안에 갇혀 있던 팔레스타인인의 절반가량은 어린이들이었다"면서 "가자지구 침공이 시작된 이후 가장 심각한 사건 중 하나"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하루 전날인 8일,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 국군과 경찰이 반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439명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했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순천지역 희생자는 439명으로 확인됐으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거나 사건 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 수는 2000여 명을 상회할 것으..

집권세력의 콤플렉스와 노스탤지어가 무섭다

전쟁을 수행 중인 군인이라고 해서 법적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들을 마음껏 죽이거나 여성을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워버릴 수 있을까?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일제의 '군 위안부' 동원과 각종 학살만행이 영원히 인류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런 일들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권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8일 순천지역 여순사건과 관련해 439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사실을 밝혀내고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이처럼 '진실 규명' 결정이 난 사건에 대해 '국가는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이들은 왜 열여덟 청상과부가 되었나

노점순·김서운은 동갑내기다. 노점순은 열 다섯, 김서운은 한 해 먼저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신촌마을로 시집을 갔다. 그녀들의 시댁은 아래 윗집 사이였다. 김서운은 병곡댁, 노점순은 도북댁이라는 택호로 불렸다. 철없는 소녀의 나이로 각 가정의 며느리와 아내가 된 그들은 같은 해인 1949년 열 여덟에 첫 아이를 낳았다. 노점순은 그해 4월, 김서운은 9월초에 각각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김서운의 남편 최재일(당시 26세)은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루 전날인 9월 6일 오후 노점순의 남편 박판갑(당시 23세) 등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경찰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노점순의 남편은 집을 나서기 전 방에 누워있던 생후 4개월짜리 아들에게 입을 쪽 하고 맞추며 "아부지 갔다올께" 하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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