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악의 폭군은 연산군이다. 그는 결국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다. 이어 왕으로 추대된 중종은 연산군 때의 폐정(弊政)을 개혁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강화한다. 그는 즉위 3년 승정원과 예문관에 붓 40자루와 먹 20개를 내리면서 "이것으로 나의 모든 과실을 숨김없이 쓰라"고 했다. 또 7년에는 "사관(史官)의 직무는 국가와 관계되며, 대저 역사란 사실대로 써서 천추에 전하는 것인데, 사화(史禍·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말함)를 겪은 이후로는 모두 사필(史筆)을 경계할 뿐"이라고 탄식하며 "사필 잡은 자들은 왕의 선악과 신하의 득실을 사실대로 써서 숨기고 꺼리는 폐단이 없어야 한다"고 전교했다. 이처럼 조선은 '대간에게 비판받으면 관료생활을 못하는 것으로 그치고, 왕에게 잘못 보이면 귀양을 갔지만, 사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