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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학살 114

진선미 이재오 정수성이 발의한 학살 규명 법안

어제(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65주기 제8회 합동위령제가 있었다. 장소는 옛 부산형무소 마산분소 자리였던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이었다. 여기엔 이 지역구 이주영 국회의원(새누리당)도 참석해 추모사를 했다. "전쟁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에 대한 추모와 명복의 뜻을 여러분과 함께하고자 한다.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여러분과 뜻을 함께하면서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길에 함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회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일이란 현재 계류 중인 진상규명 법안이 통과할 수 있도록 적극 힘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법안이 계류되어 있는지 알아보았다. 2015년 9월 현재 국회에는 3건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및 보상 관련 법안이 계류..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 레드 툼

"저는 아버지란 사람이 원래 없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다른 아이들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우리 아버지만 없다는 걸 알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민간인학살로 살해됐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통 우리는 부모를 잃고 1년 만 지나도 슬픔을 잊는다.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우는 경우는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 (감독 구자환)에서는 나이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65년 전 헤어진 사람을 그리며 서럽게 운다. 빗속에서 진흙탕에 막걸리를 뿌리며 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통하게 했을까? 영화 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

한국 역사에서 꼭 해결해야 할 3가지 문제

1960년 창립했다가 1961년 5.16쿠데타로 강제해산되었고, 2009년 재창립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네요. 2009년 바로 이 자리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마산유족회' 재창립을 논의하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 후 마산 창원 진해 통합으로 '통합 창원유족회'가 되었고, 오늘은 또 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네요. 창립 당시부터 쭉 같이 해왔었는데, 해마다 참석하는 유족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참 뿌듯합니다. 엊그제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한 연구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제에 부역..

우리지역 둘러보기-진주인권학교

진주지역 시민사회에서 진주를 '인권도시'라 표현한 것은 제법 오래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정해방운동이자 신분차별 철폐운동이었던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진주이니만큼 진주가 인권도시여야 한다는 당위는 확보된 셈이다. 진주는 또한 지난 2012년 7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무장애 도시(Barrier Free City)'를 선언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 장애인, 어린이, 임산부를 비롯한 시민 모두가 장애없이 이동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장애 없는 생활환경' 구축을 통해 살기 좋은 복지도시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무장애도시는 이창희 진주시장이 직접 선포했고, 관련 조례도 제정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서은애 진주시의원의 발의로 '진주인권조례'도 제정됐다. 진주가 인권..

민간인학살 희생자 창원위령제에 모인 사람들

2014년 제64주기 제7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이 7월 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청 1층 강당에서 열렸다. 오랫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선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다. 그는 2005년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와는 2000년부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뜻을 모으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를 함께 했다. 김동춘 교수 사진 한 장 더.... 정동화 유족회 부회장이다. 그는 2001년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한 '민간인학살 유족 증언대회에 나와 당시 창원시의원 신분으로 자신이 보도연맹 학살 희생자의 아들이라고 증언했다. 노치수 유..

민간인학살 64년, 위령제는 7차인 까닭

2014년 제64주기 제7차 창원지역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이 7월 5일 오후 1시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청 1층 강당에서 열렸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는 23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717명 정도로 확인했고, 그 중에서도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358명이었다. 그 분들이 학살된 지는 64년이 지났는데, 위령제는 왜 7차일까? 이날 정동화 부회장이 읽은 경과보고는 이렇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009년 2월 18일 마산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의 희생자 63명의 진실규명 결정 후 동년 4월 25일 오후 1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김주완 부장의 주선으로 김도곤, 황양순, 노치수, 송시섭, 송수섭, 권영철, 배기현, 김재환, 김정임,..

민간인학살유족회에 대한 안상수의 약속

오늘(7월 5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가 준비한 창원지역 합동 위령제 및 추모식이 열렸다. 희생된 지 64주년, 위령제 횟수로는 7차였다. 안상수 창원시장이 참석하진 않았지만, 추모사를 보냈고, 행정과장이 참석했다. 추모사에서 안상수 시장은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지역에서 발생했던 국민보도연맹사건,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등 한국전쟁 당시 참혹했던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일부 이루어지고, 위령제와 추모식이 열리고는 있지만 유족들의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풀기에는 아직까지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의 불행하고 아픈 역사를 용서와 화해로 극복하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누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난할 수 있는가

20세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인권침해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일본군 성노예(sex slaves, 이른바 '위안부')와 민간인 집단학살(genocide)을 든다. 불행히도 두 사건은 모두 우리나라가 최대 피해국이다. 국가권력이 가장 힘없는 국민을 희생자로 삼았던 범죄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건의 다른 점도 있다. 성노예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백성에 대한 범죄라면, 민간인학살은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자국민을 죽인 것이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도 집단학살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나치가 유대인을 죽였다느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우와 다르다. 범죄의 가해 주체가 달랐던 만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 과정도 확연히 다르다. 독일의 경우 1945년 패전 후 전범재판에서 주모자급 12명이 교수..

함양 치라골 민간인학살 구술증언록

성명 임이택생년월일 1938년 9월 15일주소 경남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마을조사 일시 및 시간 2008년 10월 2일 / 46분주요 연보 - 1938. 함양군 수동면 내산마을 출생 - 2006~ 함양군 수동면 치라골 양민학살 유족회장 ◦ 구술자 : 임이택◦ 면담자 : 김주완 공동연구원◦ 면담주제 : 1949년 치라골 민간인학살 사건◦ 면담일자 : 2008년 10월 2일◦ 면담장소 :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마을(치라골) 자택 아랫방 (면담 상황) 구술자 (자문사례비 영수증을 작성하며) 통장계좌번호는 또 봐야 알겠는데...다소 작고 말고 간에 돈이라쿠는 거는 참, 명목이 있어야 되는데, 무신 명목으로 날 주는지 모르겠지만, 계좌번호 적어드릴께요. 팔삼일공칠오... 면담자 제가 좀 여쭙겠습니다. 어르..

민간인학살 구술증언록을 공개합니다

얼마 전 한 연극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한 이 분은 민간인학살 유족들의 증언을 찾고 있다고 했다. 9월에 올릴 연극이 '민간인학살'에 관한 공동창작 작품이라고 했다. 아래는 메일 중 일부다. "제가 찾고 있는 자료는 민간인 학살 유언자들의 증언들입니다. 지역별로 유족증언대회들이 열렸던걸로 압니다 ..경남지역도 유족증언대회가 있었던걸로 아는데 혹시 김기자님이 가지고 있으신 자료중에 증언대회 영상자료나 피해자 분들 인터뷰 자료가 있으신가요?.. 혹시라도 제가 찾는 자료가 없으시다면 제가 그런 자료들을 찾을수 방법이 있을까요..? 왜 굳이 인터뷰 자료가 있어야 하느냐?그런 기록들을 남긴 글들도 있지 않느냐,그리고 유족분들을 직접찾아 가서 인터뷰 하면 되지 않느냐? 하고 의문을 가지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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