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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역사 3

일제강점기 마산의 일본 사찰 앞에 서 있던 누각의 정체?

넓은 공터 왼편으로 이층 누각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마산만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완월동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曹洞宗 福壽寺라는 절에서 본 풍경이다. 예전에 이 사진을 보면서 복수사는 일본 사찰인데 저 이층 누각은 뭐지? 분명히 조선식인데?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건물인가? 저런 건물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닌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곤 시간이 흘러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에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누각은 원래 鎭東에 있었는데 '진동학교조합'에서 이 절에 기부 이건하였고 복수사는 이를 山門으로 삼아 觀海樓란 이름을 붙이고 1928년 5월에 낙성식 및 관음제를 성대히 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당시 마산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하게 됐다. ..

마산에 전국적 노동운동가가 있었지만 묻힌 까닭

소담(昭潭) 노현섭(盧玄燮) 풍천 노 씨 곡안리 민간인학살사건|마산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운동|마산 여양리 민간인학살지 1921 구산면 안녕마을 출생1944 일본 중앙대 법대 졸1946 마산보통상업학교 교사1950 마산부두노조위원장1952 마산고등공민학교 교장1954 전국자유연맹 위원장1955 마산시 교육위원1956 마산노동병원 병원장1960 양민학살 전국유족회장1991 사망 [정의]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에서 처음으로 양민학살유족회를 결성하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섰으며 전국유족회장을 맡았으나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연행되어 용공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한 사회운동가이자 항운노조의 전신인 자유노련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 [가계]아들 노치웅(전 경남에너지 총무·기획이사) 씨 등..

역사도 없이 사라져버린 근대도시 마산

역사와 문화에 무지했던 마산·창원시장들방치돼있는 헌병분견대를 역사기록관으로 벌써 두어 달 전 이야기다.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가 '마산헌병분견대(등록문화제 제198호)의 의의 및 활용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발표자인 허정도 박사(도시학)는 "현재의 건물 면적이 좁으므로 인근 부지를 추가 확보하여 지금보다 공간을 넓힌 후, 제2의 건물을 신축하여 '마산 근대역사관'이나 '기록관' 혹은 '인권과 민주주의 기념관' 등 역사문화 전시공간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적극 동의했다. 하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부지를 추가 확보하자는 말은 일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비록 작은 공간이나마 지금 건물에서 우선 역사기록관을 시작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이름에서부터 뮤지엄(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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