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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헌병대 3

조선왕조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기록관리

가끔 한국 현대사에 얽힌 새로운 사료(史料)가 발견됐다는 언론보도를 접했을 때, 그 자료의 출처는 어김없이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인 경우가 많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왜 우리나라의 역사자료가 국내엔 없고 미국에만 있을까' 하고 의문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던 중 불과 몇년 전 '기록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도서관(library)이나 박물관(museum)과는 또 다른 기록관(archives)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서관이 인쇄된 책을 보관하고, 박물관이 유물을 보존하는 곳이라면, 기록관은 말 그대로 문서를 비롯한 각종 역사자료를 보존하는 곳이다. 선진국에는 이 기록관이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숫자만큼이나 많다는 사실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보..

조선시대 왕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경남 마산의 근대문화유산인 일제시대 헌병분견대 건물이 노무현 정부 시절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최근 또다시 몇몇 보훈유관 친목단체 등에 무상임대될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이 블로그에서 전한 바 있다. (☞ 문화유산을 왜 특정단체에 무상임대하나?) 나는 그 글에서 마산 헌병대 건물이 근현대 문화유산인만큼 문화재의 용도에 맞게 '근현대 마산 역사기록관(아카이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이 올린 글을 보니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설립될 예정이던 대통령 기록관도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 전진한 : 향후 퇴임 대통령 기록은 관리 안하겠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 조선시대 이후 단절된 기록문화를 되살리겠다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는 간단히 부..

문화유산을 왜 특정단체에 무상임대하나

경남 마산에는 83년 전인 1926년 일제가 지은 일본 헌병분견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인 1909년 12월부터 일제 헌병은 마산에 있었으나 분견대 건물이 지어진 것이 1926년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1945년 해방 때까지 20여 년간 헌병대로 사용되었던 이 건물에서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초를 당했을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해방 후에도 이 헌병대 건물은 국방부 소유가 되어 군 정보기관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지금은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로 이름이 바뀐 옛 보안사의 마산파견대가 '해양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각종 사찰활동을 해왔겠죠.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헌병대가 해방 후에는 민주화운동가들을 사찰하고 고문하는 정보기관으로 탈바꿈 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1990년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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