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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6월항쟁 2

87년 6월 10일 경남엔 무슨 일이 있었나(2)

경찰·행정·정당, 그리고 언론에 분노 폭발 6·10마산대회의 절정은 마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축구대회가 최루탄으로 인해 중단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마산대회는 국내·외 관심의 초점이 됐다. 오후 6시30분 마산 창동 코아제과 앞 도로를 거쳐 육호광장으로 진출하던 시위대는 가로막고 있던 경찰을 투석으로 돌파하고 일시에 광장을 점거했다. 박영주씨의 기록에 따르면 이 광장에서 시위대는 어디로 갈 것인지 잠시 논란을 벌였던 것으로 돼 있다. 만일 시위대가 운동장 쪽으로 가지 않고 마산역 방향으로 갔더라면 이날 시위는 싱겁게 마무리되고 말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운동장 쪽을 택했다. 87년 6월항쟁의 역사 중 17일 경상대생의 남해고속도로 LP 가스차 탈취사건과 함께 전국의 시위 열기에 가장 큰 영향..

뭔가 아쉬운 지역 촛불집회, 이유는?

지금 이런 글을 쓰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의식하고 눈치보면서 블로그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본대로, 느낀대로 씁니다. 10일 서울에서 6·10 범국민대회가 열린 비슷한 시간대에 전국의 각 시·군에서도 6월항쟁 계승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에서도 '6월항쟁 계승 민주주의 회복 마산시민 촛불문화제'가 '6월항쟁계승 마산시민촛불문화제 행사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습니다. 원래 공지된 집회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회사 일을 마치고 8시에 가까워서야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는 그야말로 철저히 고립된 지역입니다. 2차선 도로에, 아래로는 남성동파출소(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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